[이 아침의 시] 나무의 지혜 - 유하 (1963~)
대나무숲이 있다
대숲이 거센 폭풍을 잠재울 동안 사람들은
아늑한 꿈의 대숲 속으로 깃들일 수 있었다
사람의 지혜가 그 숲을 만든 것이다

대나무숲이 있다
바람 불면 그 무수한 구부러짐의 장관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나무의 지혜가 아름다움을 만든 것이다

대숲 가의 사람들은 끝없이 찬양했다
그 아늑한 꿈과 아름다움의 지혜를
그러나 두 가지 지혜를 안간힘으로 길러냈던
거대한 뿌리들은,
어둠 속으로 깊이깊이 몸을 내릴 뿐이었다


시집《세운상가 키드의 사랑》(문학과지성사)中

대숲을 거닐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묘한 신비감과 편안함이 한꺼번에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 대나무를 심은 것도 그 때문일까요. 아늑함과 아름다움을 주면서 조용히 뿌리를 뻗는, 대나무의 지혜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