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신성장산업에 10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미래창조과학부 금융위원회 등 6개 부처가 엊그제 청와대에 보고한 업무계획에서다. 미래 먹거리가 될 스마트자동차, 지능형 로봇, 사물인터넷 등 13개 분야에 99조6000억원을 투입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역동적인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서란다. 그런데 너무 낯이 익다. 그동안 ‘OO산업에 ××조원 투입’이란 발표를 수없이 봐온 탓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신성장산업이 활성화된다면야 시비 걸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정부 발표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보 기보 등 정책금융기관은 지난해에도 신성장산업에 89조2000억원을 공급했다. 올해 그 액수를 10조4000억원 증액한 게 달라진 것일 뿐이다. 산업은행 등의 자금 공급계획을 모두 끌어모아 100조원으로 꿰맞춘 게 아닌가 싶다.

창조경제를 하겠다는 관료들이 여전히 ‘물량 투입=산출’이라는 대량생산 시대의 도식을 버리지 못하고 거창한 청사진을 쏟아낸다. 정책자금을 넣어야만 산업이 일어난다는 낙후된 사고방식 탓이다. 오히려 정책자금이 늘수록 보조금 브로커들이 판치고 금융의 중개기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민간의 창의가 뛰어놀 수 있도록 정부는 멍석만 깔아주면 그만이다. 여태껏 정부가 간섭하지 않은 분야일수록 잘된 게 한국의 산업 생태계였다.

대통령은 부산 국제시장이나 남해 독일마을이 영화 한 편으로 활성화된 사례를 드는데 관료들은 보여주기식 숫자만 나열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대통령이 수없이 창조경제를 강조했어도 이런 수준이다. 관료 의식은 왜 이리 안 바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