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대신 실리콘밸리로…美 인재들 '디지털 골드러시'
월스트리트가 인재 확보 경쟁에서 실리콘밸리에 밀리고 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모바일 뱅킹과 대체결제 시스템을 통해 월가 시장에 침투한 데 이어 고급 두뇌들마저 벤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회사)으로 몰리고 있다. 대형 투자은행(IB)을 목표로 삼았던 경영대학원(MBA) 지원자는 줄어드는 반면 컴퓨터공학 등을 전공하려는 지원자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12일 경제전문 채널인 CNBC 등에 따르면 2013년 미국 내 경영전문대학원 입학생은 전년보다 1% 줄어든 반면 수학과 컴퓨터공학 석사학위 지원자는 11% 늘었다. CNBC는 과거 수년간 비싼 학비를 감수하고 명문 MBA에 뛰어들던 인재들이 IT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의 제프리 가렛 학장은 “경영학 전공 학부생은 여전히 월스트리트를 희망하는 반면 MBA 출신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나 IT기업으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 MBA 졸업생 중 기술기업에 취업한 비율은 18.4%로 전년도의 12%보다 크게 늘면서 개교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금융 분야를 선택한 비율은 20%에서 14%로 추락했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졸업생들도 기술기업으로 진로를 잡은 비율이 전년도 12%에서 18%로 늘었다. 반면 월스트리트에 진출한 비율은 같은 기간 35%에서 27%로 감소했다.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아마존은 2013년 MBA 졸업생을 전년보다 40% 많이 채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명문 MBA 출신이 실리콘밸리를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연봉은 낮지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업무를 한다는 만족감이 크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CNBC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에 구조조정 바람이 닥친 이후 우수 인력들이 실리콘밸리에 몰리고 있다며, 이를 디지털 골드러시에 비유했다.

트렌드가 바뀌면서 MBA 과정을 운영하는 명문대들도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코넬대는 구글 뉴욕본부와 제휴해 데이터 분석 등을 가르치는 1년짜리 테크 MBA과정을 운영 중이다. 하버드와 컬럼비아 비즈니스스쿨도 창업인큐베이터 과정을 MBA 프로그램에 추가했다.

사모펀드(PEF)와 헤지펀드에 이어 실리콘밸리와 인재 확보전을 벌이게 된 월가의 대형 IB들은 연봉 인상과 근무시간 단축을 미끼로 내걸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부터 가장 낮은 직급의 기본연봉을 7만달러에서 8만5000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연말 보너스까지 포함할 경우 연봉이 12만달러에서 14만달러로 오르게 된다. 씨티와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 등도 초임 직원의 기본연봉을 올해부터 20~25%씩 올릴 계획이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