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난타 1000만명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 앞길은 밤 10시가 가까워지면 때아닌 체증을 빚는다. 난타전용관에서 공연을 보고 나온 중국 관광객들을 태우려 대기 중인 버스 10여대가 늘어선 까닭이다. 2013년 개관한 충정로 전용관은 54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인데도 빈자리가 드물다. 한 해 한국에 와서 공연을 본 외국인 110만명 중 70만명이 ‘난타(亂打)’를 관람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1997년 10월 초연한 ‘난타’가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1년 만인 2008년 10월 400만명, 2012년 11월 800만명 돌파에 이어 2년 만에 또 200만명이 늘었다. 18년째 장기공연인데도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요즘엔 8할이 외국인이다. 물론 1억3000만명이 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순수 한국산 공연에 1000만명이 든 것은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다.

‘난타’의 강점은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요소를 잘 버무린 데 있다. 언어 장벽이 없는 비언어극, 원시적인 리듬, 주방과 요리사 등으로 보편성을 갖추고 사물놀이 장단과 마당극 형식을 차용해 한국적 특성을 살린 것이다. 영국 ‘스톰프’, 미국 ‘튜브’ 같은 비언어극의 장점을 최대한 수용하되 우리식으로 잘 소화해 대사도 없는 100분간 공연이 지루하지 않다.

이에 힘입어 ‘난타’는 작년 말까지 51개국 289개 도시에서 총 3만1290회 공연됐다. 구미 일본 동남아는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까지 안 간 곳이 없다. 공연에 소모된 칼만 2만2000여개이고 오이와 당근은 각기 31만여개를 썰었다. 공연팀은 1팀(5명)에서 10팀(50명)으로 확대됐고 서울 명동 충정로, 제주와 태국 방콕 전용관에서 연중 공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난타’가 시작부터 창대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직전 초연은 성공적이었지만 첫해 10억원 적자였고 해외 판매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돌파구가 된 게 영국 에든버러페스티벌 참가였다. 1200여 경쟁작들 틈에서 ‘난타’는 최고 평점, 전회매진이란 개가를 올렸다. 여세를 몰아 2003년 아시아 공연으론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이 같은 성공은 ‘난타 아버지’로 불리는 송승환 PMC프로덕션 회장(58)의 노력이 절대적이다.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했다는 그는 “1000만명이 본 게 아니라 아직 1000만밖에 안 봤다”고 자신한다. 이미 중국에 진출했고 인도까지 공략하면 2000만, 3000만명 돌파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칼과 도마 채소로 최상의 수출상품을 만들어 낸 것은 아이디어와 자신감이었다. 이런 게 창조경제 아니겠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