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영화 한 편이 정치 이슈가 됐을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영화는 영화일 뿐!”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다. 영화보다는 그에 따른 정치적 손익계산에 더 민감하다. 작년 이맘때 ‘변호인’이 불편했던 우파나, 지금 ‘국제시장’에 좌불안석인 좌파나 반응은 엇비슷하다. 이제는 누가 더 많이 보나 관객 수가 초미의 관심사다.
두 영화 모두 굴곡진 현대사가 배경이다. 영화와 현실이 수시로 오버랩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인’은 자막에 허구라고 명시했다. 실제 사실과 다르다고 시비를 걸면 픽션인데 뭐가 문제냐고 퉁칠 안전장치를 해둔 셈이다.
‘안티→긍정’이 흥행코드로
반면 ‘국제시장’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변호인’이 특정한 누군가(somebody)를 다뤘다면, ‘국제시장’은 어렵던 시절 아무개(anybody)들의 얘기인 까닭이다. 주인공 덕수와 영자는 40대 이상 중년세대엔 너무도 익숙한 인물 유형이다. 나의 개인사와도 무관치 않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게 부모님 피란시절이다. 돌아가신 이모부 세 분은 각기 6·25, 월남전, 중동을 경험했다. 어릴 적 “기브 미 초코레뜨”는 그저 일상이자 놀이였다.
문재인 의원도 수긍했듯이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국제시장’은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를 영상으로 버무려낸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다. ‘쉰들러 리스트’에 감동했다면 흥남 철수의 메러디스 빅토리호 스토리는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 오히려 여태껏 이런 소재를 영화로 안 다룬 게 의아스럽다.
윤제균 감독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1번가의 기적’(철거민), ‘두사부일체’(학원비리)도 있고 1000만 상업영화 ‘해운대’도 있다. 흥행의 촉이 남다른 감독일 뿐이다. 조연 오달수는 ‘변호인’에도, ‘국제시장’에도 나온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총관객 수가 1억명일 정도로 믿고 보는 감초연기의 달인이다. ‘국제시장’은 될 것 같으니까 자본이 투자했고, 재미 있으니 관객이 몰린다. 이런 영화를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스스로 정치 중독자임을 커밍아웃하는 꼴이다.
광복 70년, 영화 역사전쟁 예고
지난 10여년 영화판은 반미·반정부의 안티 코드가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국인 특유의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흥행코드로 먹혔다. 그러나 안티도 지나치면 식상하게 된다. 그 대안으로 긍정과 아버지가 흥행코드로 떠오른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허다하다. 여전히 영화는 가장 강력한 프로파간다 수단이다. 더구나 올해는 광복 70년이다. 한쪽에선 ‘건국 70년’, 다른 쪽에선 ‘분단 70년’으로 본다. 식민지, 동란을 겪고도 두 세대만에 팔자 고친 대한민국인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남한인가. 올해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의 전면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는 6월 ‘연평해전’이 개봉되지만, ‘100년 전쟁’류의 영화나 영상물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럴수록 지금의 삶을 당연시하는 젊은 세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부모와 함께 ‘국제시장’을 보며 펑펑 운다. 세대 간 소통이 가장 두려운 이들은 표밭이 빤한 정치인들일 것이다. ‘국제시장’의 덕수 부부는 이 고생을 우리가 겪어 다행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피맺힌 민주화를 우리 때 이뤄 다행이라는 이들은 없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두 영화 모두 굴곡진 현대사가 배경이다. 영화와 현실이 수시로 오버랩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인’은 자막에 허구라고 명시했다. 실제 사실과 다르다고 시비를 걸면 픽션인데 뭐가 문제냐고 퉁칠 안전장치를 해둔 셈이다.
‘안티→긍정’이 흥행코드로
반면 ‘국제시장’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변호인’이 특정한 누군가(somebody)를 다뤘다면, ‘국제시장’은 어렵던 시절 아무개(anybody)들의 얘기인 까닭이다. 주인공 덕수와 영자는 40대 이상 중년세대엔 너무도 익숙한 인물 유형이다. 나의 개인사와도 무관치 않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게 부모님 피란시절이다. 돌아가신 이모부 세 분은 각기 6·25, 월남전, 중동을 경험했다. 어릴 적 “기브 미 초코레뜨”는 그저 일상이자 놀이였다.
문재인 의원도 수긍했듯이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국제시장’은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를 영상으로 버무려낸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다. ‘쉰들러 리스트’에 감동했다면 흥남 철수의 메러디스 빅토리호 스토리는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 오히려 여태껏 이런 소재를 영화로 안 다룬 게 의아스럽다.
윤제균 감독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1번가의 기적’(철거민), ‘두사부일체’(학원비리)도 있고 1000만 상업영화 ‘해운대’도 있다. 흥행의 촉이 남다른 감독일 뿐이다. 조연 오달수는 ‘변호인’에도, ‘국제시장’에도 나온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총관객 수가 1억명일 정도로 믿고 보는 감초연기의 달인이다. ‘국제시장’은 될 것 같으니까 자본이 투자했고, 재미 있으니 관객이 몰린다. 이런 영화를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스스로 정치 중독자임을 커밍아웃하는 꼴이다.
광복 70년, 영화 역사전쟁 예고
지난 10여년 영화판은 반미·반정부의 안티 코드가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국인 특유의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흥행코드로 먹혔다. 그러나 안티도 지나치면 식상하게 된다. 그 대안으로 긍정과 아버지가 흥행코드로 떠오른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허다하다. 여전히 영화는 가장 강력한 프로파간다 수단이다. 더구나 올해는 광복 70년이다. 한쪽에선 ‘건국 70년’, 다른 쪽에선 ‘분단 70년’으로 본다. 식민지, 동란을 겪고도 두 세대만에 팔자 고친 대한민국인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남한인가. 올해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의 전면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는 6월 ‘연평해전’이 개봉되지만, ‘100년 전쟁’류의 영화나 영상물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럴수록 지금의 삶을 당연시하는 젊은 세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부모와 함께 ‘국제시장’을 보며 펑펑 운다. 세대 간 소통이 가장 두려운 이들은 표밭이 빤한 정치인들일 것이다. ‘국제시장’의 덕수 부부는 이 고생을 우리가 겪어 다행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피맺힌 민주화를 우리 때 이뤄 다행이라는 이들은 없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