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결핵 앓으며 쓴 20대 청년의 영성일기
“또 기침이 나는구나. 이젠 이 아픔도, 기침도, 외롭고 고통스러움도 사랑하게 되었다. 어떤 소녀가 철로 길에서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이 아픔보다도 더 피나는 기다림을 갖고 있다. 돈도 아니다. 명예도 아니다.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오만과 허영과 음울도 아니다. 새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찬바람 부는 저녁에 나는 주님을 찾는다.”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를 설립한 고(故) 하용조 목사(1946~2011·사진)가 스물세 살이던 1969년 2월 쓴 일기다. 평남 진남포에서 4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부터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참가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선교하다 폐결핵을 얻었다. 전남 목포의 외딴 병원에서 요양하던 그는 선교 때문에 병을 얻었다고 말하는 대신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하 목사가 병원에서 요양하며 쓴 46년 전의 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1968년 8월1일부터 이듬해 5월2일까지 쓴 일기를 담은 《나의 하루》(두란노 펴냄)다. 병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청년 하용조는 일기를 써내려 갔다.

병상에 누운 그의 걱정은 어떻게 하면 나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병은 고칠 수 있어도 인간은 누가 고칠 것인가? 아, 볼수록 괴롭고 알수록 연민스럽다. … 그곳에 세상 사람들이 제조하여 줄 치료법도, 화학 약품도 없다. 이것이 한국의 상류사회다.”

그래서 청년 하용조는 이렇게 스스로 다짐한다. “한 사람도 좋고 두 사람도 좋다. 나는 이곳에 보내진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다.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강하게 주님의 권위로 생명의 주님을 전하리라. 그네들의 가슴에다 행동으로 전하리라.”

펜으로 때론 또박또박, 때로는 마음이 급한 듯 흘려 쓴 그의 일기는 삶과 죽음, 믿음과 실천, 사랑과 용서 등에 대한 생각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신앙고백서다. 하용조는 폐결핵을 극복한 후 1972년 장로회신학대에 들어가 목회자의 길을 준비했다.

그와 함께 CCC에서 활동했던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는 “신앙인의 마음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고백”이라며 “젊은 날 하 목사님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마음들이 건축의 설계도면처럼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232쪽, 1만3500원.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