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노마지지(老馬之智)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11.3%로 542만명에 달한다. 평균연령이 80세를 넘어가고 직장인 평균 은퇴 연령이 53세인 것을 볼 때 은퇴 후에도 25년 이상 산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가속화되는 고령화, 저출산과 은퇴인력 활용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한비자를 보면 ‘노마지지(老馬之智·늙은 말에게 길을 묻는다)’란 말이 있다.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가진 지혜라는 뜻으로,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이 전쟁을 마치고 길을 잃어 헤맬 때 명재상 관중의 제안으로 늙은 말을 앞장세워 무사히 귀환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필자도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다. 미국 대학 특성상 총장의 은퇴 연령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으로 치면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설립된 미국 대학의 초대총장을 지내다 보니 크고작은 문제로 경영상의 노하우가 필요한 순간이 있어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의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문제의 해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의 인생에 축척된 기술과 노하우, 삶의 지혜는 훌륭한 지침이 된다. 문제는 이런 경험을 가진 분들이 일을 그만두는 것과 동시에 사회에서도 역할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전쟁을 겪고, 매서운 가난과 배고픔을 이겨내며 나라를 일으킨 경제 발전의 주역, 이 수백만의 은퇴인력이 가진 기술과 경험, 지식과 지혜가 사장되는 것이 매우 아깝고 안타깝다.

머지않아 100세 시대가 다가온다. 은퇴 시점을 보면 인생의 후반전이 고스란히 남은 셈이다. 그 이후의 삶을 국가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은퇴자들은 스스로 무엇을 위해 남은 생을 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등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점점 늘어날 베이비붐 전후 세대의 은퇴인력에 대비해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재교육과 다양한 활용방안이 필요하다.

60년 전 한국이 그랬듯, 기술과 발전이 필요한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있다. 또 국내에는 기술력과 노하우가 부족해 성공하지 못하는 중소기업과 산업 현장에 대한 깊이 있는 배움이 필요한 청년들이 있다. 제한적인 범위에서 벗어나 규모 있고 체계적인 재교육을 통해 국내는 물론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 등에 이들을 보내 경험과 기술을 활용해 보는 방법은 어떨까. 사람과 세대, 국가의 미래를 일으켜 세우는 황혼여행이야말로 전반전보다 더욱 의미 있는 인생의 후반전이 되지 않겠는가!

김춘호 <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president@sunykor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