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反인도범죄 방조 말고
우리 역할·책임 따른 전략 마련을"
이정훈 < 인권대사, 연세대 교수 >
사실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은 2005년부터 매년 채택돼 왔는데 이번 같은 북한의 반응은 처음이다. 이수용 북한 외무상은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직접 참석하는 한편 동남아와 유럽을 순방하며 공세적 외교를 펼쳤지만 결의안 채택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역시 유럽을 돌며 스타브로스 람브리니디스 유럽연합(EU) 인권특별대표와 만났지만 결과는 같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북한은 억류했던 미국인 3명을 전격 석방하며 미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북한의 반발은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적으론 북한 지도층이 떨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COI 보고서는 일찍이 북한인권 문제를 70년간 정권유지를 위해 지속돼온, 면책사유나 시효가 없는 국제법상 최악의 ‘반인도 범죄’로 규정한 바 있다. 즉, 수십 년 동안 국제사회의 감시망과 법적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온 북한을 유엔이 뒤늦게나마 적발한 것이다.
인권문제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이 분명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꿈적 않던 북한이 이번 결의안을 놓고 몸부림을 치는 뜻밖의 모습에 국제사회는 크게 고무돼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책임과 임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우선 북한인권결의안은 다음달 중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공식 채택되는 절차가 남았다. 그 후 유엔안보리에 전달될 예정이다. 그러나 총회의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안보리가 이 결의안의 건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확률은 현재로서는 낮다. 특히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ICC 회부 문제는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주요 2국(G2)을 꿈꾸는 중국이 이번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시리아, 수단, 북한 등 불량국들의 골목대장 역할을 언제까지 할지 의문이다. 글로벌 리더로 거듭나고 싶은 중국에 북한 감싸기 정책은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북 인권정책은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함께 ‘왕따’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될 것인지에 대한 리트머스 테스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가 침묵을 깨고 북한인권 탄압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침묵은 범죄에 대한 방조행위이기 때문이다. 대니얼 골드하겐 하버드대 교수는 홀로코스트의 책임이 히틀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침묵한 독일인 전체에게 있다고 ‘히틀러의 충성스런 집행자들’이라는 저서에서 일찍이 갈파했다.
북한인권 문제는 이제 남북관계 차원을 넘어섰다. ‘보편적 가치’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각인됐다.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북핵과 인권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북핵 문제는 한국이 주도하기 어렵지만 인권 문제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명분도 있고 충분히 가능하다. 북한인권은 분명 통일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다. 유엔이 앞장선 지금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검토하고 전략을 세워야 할 이유이다.
이정훈 < 인권대사, 연세대 교수 jh80@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