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투명한 정보공개가 구조개혁 앞당긴다
식어가는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구조개혁은 물러설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걱정하는 목소리만 들릴 뿐, 논의의 진전은 없고 대안은 원론에서 맴돈다. 이해관계자 간 대립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러는 동안 경쟁력 약화와 내수 부진 등 구조적인 문제점은 커져만 간다.

민영화나 공공성 등과 관련한 도그마에 갇혀 있다는 점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개혁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 과정상의 특징으로 대립이 극단적인 양상을 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장 또는 정책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커 타협을 통한 조정 여지가 거의 없다. 어떤 이슈를 두고 한쪽의 극단적인 입장을 0이라 하고 다른 쪽 극단을 10이라 하자. 많은 경우 2 또는 3과 7 또는 8 간의 대립으로 선명성 경쟁을 한다. 이는 이념과 성향을 같이하는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상대방을 이해하기보다는 자기를 외치기만 할 뿐이어서 서로간의 불신만 키우게 된다.

두 정책이 대립할 때 사회적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쪽이 채택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이론적으로 볼 때 두 정책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게 된다. 만일 정책 A가 0에 가까운, 예컨대 2 정도에 위치한다면 정책 B는 굳이 8 부근에 위치할 것이 아니라 2보다 약간 우측, 즉 3 정도에 위치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이 정책은 3과 10 사이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든 집단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 한·일전을 앞두고 철수가 한국 팀이 비기거나 진다는 결과에 베팅한다 치자. 2점 차로 이길 것 같다고 생각해도 영희로서는 굳이 2점 차 이상 승리가 아니라 1점 차 이상 승리에 거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합리적인 경쟁자들이라면 앞서 본 것처럼 한쪽에 치우치는 2나 8을 주장하기보다는 중간 지점인 5 부근에서 상대적으로 미세한 차이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공공경제학에서 말하는 ‘중위투표자정리’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상당부분 정보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에서 투자개방이나 원격진료 등 의료서비스 정책에 대해 일반인의 90% 이상이 내용을 모른다고 대답했다.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주체인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논의는 이념적 배경을 달리 하는 이른바 전문가들 간의 공허한 설전일 뿐이다. 일반국민이 특정 이슈에 대해 잘 모른다면 합리적 판단을 통해 지지 또는 반대 의사표시를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각 정책의 내용과 스펙트럼상의 위치가 잘 알려진다면 극단적인 주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상대 정파나 이익단체가 중간에 가까운 쪽으로 정책을 바꿔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정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가 건전한 정책경쟁을 유도해 사회적 합의도출의 전제조건이 되는 셈이다. 입장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설득과 양보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쉬워질 것임은 물론이다. 학계와 언론이 치우치지 않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에 안착하느냐 아니면 선진국 문턱에서 고꾸라지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혁신경제와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노동시장과 각종 연금개혁 등 중요한 결정들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논의는 꽉 막혀 있다. 진지한 토론과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극단적인 대립을 완화시키고 타협과 합의의 선순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엇보다도 정확한 정보제공과 이에 기반한 합리적인 여론형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