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간 전직 국회의원 11명이 주요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등 100여명의 정치권 출신이 공기업 임원으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는 해당 분야와 무관한 사람도 상당수여서 “관료 출신(관피아)을 막아 놓으니 정치권 출신(정피아)이 득세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이 300여개 공공기관의 임원 변동 현황을 조사한 결과 함승희 박완수 곽성문 이상권 김학송 김성회 김병호 김선동 김옥이 원희목 정옥임 씨 등 11명의 전직 의원이 최근 1년 새 공공기관 CEO로 취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 출신의 산하기관 취업이 막히자 정치권 출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할 수 있다.

공기업 감사와 이사 자리도 상당수 새누리당 당료 출신이거나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이 차지했다. 경남은행의 경우 등기임원 다섯 명 중 네 명이 정치권 출신으로 채워졌다.

공기업 관계자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정치권 출신이 많은 것 같다”며 “이럴 바에는 전문성을 가진 관료 출신을 왜 막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공기업 임원에 취업하는 걸 무작정 나무랄 수 없지만 입성작전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문제다. 자신의 전문성과 능력에 관계없이 한자리를 차지하려다 보니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인 여망을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정치인 출신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게 아니라 낙하산 식으로 자리를 꿰차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비해 관료 출신들은 경험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일해 평균 이상의 업무수행력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출신은 오로지 다음 자리에만 몰두한다는 불신도 적지 않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치권 출신은 몸담는 곳을 잠시 머무는 여행지쯤으로 여겨 기관의 미래와 경쟁력 강화에는 무관심하다”며 “그런 사람이 떠나고 나면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곤 한다”고 우려했다.

정치권 출신들의 득세를 불안하게 보는 것과 비례해 관료 출신들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대형보험사의 사장은 평생 같은 업무를 해오며 전문성을 키워온 관료 출신들을 매도하는 요즘 분위기는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당국 출신 감사가 복잡한 보험업무를 나보다 더 깊이 이해한다는 걸 느끼고 든든할 때가 많다”며 “감사가 검토하고 도장을 찍은 결재 서류에는 나도 두말하지 않고 사인한다”고 털어놨다.

관피아 논란은 우리 사회의 ‘모 아니면 도’식 극단주의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관료 출신만 배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관료 출신을 배제하면 정치인 교수 변호사 정도만 남아 인재 풀이 크게 좁아진다”며 “능력과 자질을 갖춘 공무원을 선별해 민간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결자해지 차원에서 관료들의 철저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광엽/심성미/김동욱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