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기부왕 大賞 받은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형편 나아지면 기부?…평생 못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돈을 더 벌어 형편이 나아지면 기부하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가는 평생 기부 한 번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

신문에 만화 ‘고바우 영감’을 45년간 연재한 김성환 화백(82·사진)은 14일 “나 같은 사람이 기부했다는 사실이 더 여유 있는 분들에게 자극이 돼 기부 문화가 확산됐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판매해 모은 1억원을 작년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 만화가로는 처음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또 그가 펴낸 책 100여권의 인세를 사후 기부하기로 약속해 ‘레거시클럽’에도 가입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2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올해의 기부왕’ 대상을 받았다.

경기 분당 자택의 화실에서 만난 김 화백은 자신의 기부 소식이 크게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한국에 기부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기부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화백은 “해외엔 재산의 상당액을 사회에 기부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며 “국내엔 아직 그런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1955년부터 2000년까지 1만4139회에 걸쳐 ‘고바우 영감’을 동아·조선·문화일보에 잇따라 연재했다. 4컷 만화 속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겼다. 군사정권 시절엔 그의 풍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권력 핵심부의 검열·협박 등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김 화백은 “개인 사정으로 며칠 동안 ‘고바우 영감’이 쉰 적이 있었는데 ‘혹시 김 화백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는 얘기가 외신에 돌기도 했다”며 “얼마 후 정보기관에서 찾아와 간섭하지 않을 테니 만화를 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고바우 영감’의 영향력을 실감한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이 선거철이 되면 앞다퉈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대체로 얼굴 좀 험악하게 그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많았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너무 ‘꺽다리’로 그리지 말라고 하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본인 코를 덜 뾰족하게 그려 달라고 했었죠.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경우는 얼굴의 검버섯 좀 없애 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특별한 호감이 있어 만화에 긍정적으로 표현한 정치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고 김윤환 의원과 같은 ‘킹메이커’는 아니었다”고 에둘러 답했다. 그러면서 “‘고바우 영감’을 주제로 미국 하버드대와 일본 세이카대에서 두 명의 박사가 나왔으니 이 정도면 ‘박사 메이커’로 불려도 되지 않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고바우 영감이란 캐릭터가 탄생한 것은 1950년 6·25전쟁 때다. 김 화백은 당시 피란을 가지 못하고 서울 시내 다락방에 숨어 있으면서 만화 캐릭터를 만들었다.

“당시 북진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기다리다 북한군이 들이닥쳐 다락방에 숨었어요. 그런데 똑같은 일이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벌어졌어요. 배가 가라앉는데도 배 안에 있는 게 안전하다고 방송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기가 찼습니다.”

김 화백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만평을 구상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메모장엔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꿈을 꾸는 남성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하단엔 ‘올해야 빨리 물러가라’고 적혀 있었다. “차라리 세월호 사고가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김 화백은 설명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