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날 밤 목욕탕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서쪽으로 향하는 인파를 만나 합류했다”며 “장벽을 넘어 보른홀머 거리에 도착했을 때 낯선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는데 말할 수 없는 환희가 밀려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날 이후 동독 국민의 ‘합창’과 ‘환희’는 세계로 퍼져나가 동유럽 민주화의 불씨가 됐고 소련 해체의 기폭제가 됐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가 베를린 하늘에 퍼진 순간은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이 곡은 이듬해 독일통일 선포식 때 브란덴부르크문 광장과 의사당 앞에서도 울려퍼졌다. 원래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 선율을 입힌 것이다. 1785년의 첫 시 제목은 ‘자유의 찬가’였으나 1803년 일부를 고쳐 ‘환희의 송가’로 바꿨다. 베토벤은 1792년 첫 시에 감동해 곡을 시작했다가 1824년에야 개정판을 인용해 완성했다.
이 곡이 유명한 것은 순수 기악 장르에 독창과 합창을 도입한 최초의 성악교향곡이기 때문이다. ‘합창교향곡’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었다. 우렁찬 팡파르에 이어 “오, 벗들이여,/ 이런 곡조 말고 좀 더 즐거운 걸 노래하자꾸나./ 환희! 환희를!” 하는 도입부는 베토벤이 일부러 넣은 것이다. 이어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이여”로 시작되는 실러의 시가 황홀하게 펼쳐진다.
모든 악기가 합세해 환희의 절정을 연주하는 대목에선 근심으로 고통받는 세상과 청력을 잃은 베토벤의 고뇌가 한꺼번에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노래가 어제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아 브란덴부르크문을 다시 적셨다. 세월 따라 장벽과 광장의 자취가 변하고 지휘자도 레너드 번스타인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으로 바뀌었지만 ‘환희의 송가’의 감동은 그대로였다. 200여년의 시차를 넘어 ‘기악과 성악의 화합’뿐만 아니라 ‘인류의 화합’을 노래한 베토벤과 실러의 염원이 그랬듯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