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지? 경찰서 옥상에 버스가 올라가 있네.”

6일 오후 서울역을 지나는 시민들의 시선이 맞은편에 위치한 남대문경찰서 옥상에 꽂혔다. 한 경찰관이 노란 학교버스 한 대를 번쩍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버스엔 ‘폭력 없는 행복학교 117’이란 문구가 씌어 있었다.

실제 경찰관이 버스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조형물은 경찰청이 ‘학교폭력 신고전화 117의 날’인 11월7일을 맞아 설치해 이날 공개한 옥외광고물이다.

이 옥외광고물은 ‘광고천재’로 알려진 이제석 씨(32·사진)의 설치미술 작품이다. 이씨는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실제인물이다. 드라마에서 이태백(진구 분)은 작은 간판업체 직원에서 출발해 유명한 광고인으로 성장한다.

이씨의 삶도 비슷했다. 2005년 계명대 시각디자인과를 수석 졸업했지만 국내 광고회사 취업에 모두 실패했다. 공모전 입상도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동네 작은 간판가게에서 일을 시작하다 200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8년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에서 학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2년간 뉴욕 원쇼 페스티벌 최고상 등 무려 29개 국제 광고제에서 메달을 휩쓸었다.

졸업하자 세계적인 광고회사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와 직접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씨는 현재 각종 공익광고, 기업 옥외광고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경찰과의 인연은 주취자로 어려움을 겪는 경찰을 위해 2011년 ‘경찰서는 술집이 아닙니다’라는 카피가 담긴 옥외광고물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경찰서 지구대 간판을 마치 술집 네온사인처럼 만든 광고였다. 이듬해엔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경찰박물관 외벽에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광고를 설치했다. 경찰관이 ‘빵셔틀 운행중지’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작품이다.

작년엔 부산 남부경찰서의 옛 건물 벽면에 순찰차 한 대가 박혀 있는 광고물을 설치했는데, 세간에 화제가 되면서 이씨의 대표 작품이 됐다. 순찰차가 벽면을 뚫고 나가는 모습을 마치 총알이 뚫고 간 자리처럼 연출했고,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라는 카피도 달았다. 시민 안전을 지키겠다는 경찰의 의지를 낡은 옛 경찰서 건물 전체로 표현한 것이다.

이씨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뉴스나 외신을 통해 공익광고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며 “그동안 경찰과 함께 일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보람을 많이 느낀 만큼 앞으로도 더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