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기업유치 경쟁이 총성 없는 전쟁 같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 각국은 산업경쟁력 강화 및 고용 창출을 위한 제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문기구인 첨단제조업파트너십(AMP) 운영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조업 분야에 5억3000만달러(약 5600억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지난달 발표했다. 독일과 일본도 각각 ‘인더스트리 4.0’ ‘전략적 이노베이션 창조프로그램(SIP)’ 시행에 발동을 걸었다.

제조업은 예전의 굴뚝산업에서 탈피해 점점 하이테크화·스마트화하고 있다.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스러운(dangerous) 저임금의 3D산업이 아니라 고임금을 보장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혁신의 진앙(震央)이기도 하다. 신소재,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신 및 서비스와의 융합을 통한 혁신이 현대 제조업을 특징짓고 있다. 물류, 금융 같은 서비스 산업도 제조업과 연계돼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은 국가 안보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차대전 때 일본이 미국에 패한 요인 중 하나로 제조력 열세가 꼽히지 않는가. 특히 최첨단 무기 개발은 첨단 제조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제조업을 육성하려면 반드시 국내에 생산기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양산기반이 없다면 초기 설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진 각국이 중국 등으로 탈출한 공장들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산업 환경은 이들 선진국에 유리한 편이다. 한때 세계 기업들의 공장 투자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던 중국에서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악성 노조활동이 불거지고 있으며, 인건비도 갈수록 치솟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중국의 제조원가는 미국 대비 4% 수준밖에 낮지 않다고 한다. 리쇼어링(reshoring·해외이전 기업의 본국 귀환)을 통한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의 부활을 외치는 오바마 정부의 제조업 육성 전략이 먹히는 까닭이다. 덕분에 지난 4년간 미국은 제조업 부문에서 60만명 이상 고용이 확대됐다고 한다. 강성 노조 탓에 제조업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한 수년 전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일본 정부도 중국으로 넘어간 생산기지 일부를 자국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지금 대형 공장들의 해외 탈출을 목격하고 있다. 정부는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마련하는 등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역시 노조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한번 정규직을 고용하면 사실상 해고할 수 없다. 정치권은 떨어지는 노동생산성과 경쟁력은 외면한 채 임금격차 해소, 고용안정 레퍼토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기업은 생산성이 올라야 버틸 수 있는데 비정규직은 없애고 임금만 올리라고 종주먹을 댄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죄악시하는 한국 사회의 부정적 인식도 큰 문제다. 기업들이 정규직 고용을 섣불리 확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자동차산업노조(UAW)가 협조해 포드자동차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 빌 포드 포드자동차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누적적자가 3조원이나 쌓였는데도 파업을 결정한 최근의 현대중공업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적대적 노사관계와 대비된다.

진짜 큰 문제는 생산현장에서 긴장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특유의 도전정신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생산성이 형편없어도 해고의 위험이 없으니 긴장감이 살아날 리 없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안 보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제조업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중국의 거센 도전과 최악의 수출시장 환경에 고전 중인 제조업 부흥을 위한 새바람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생산 현장을 정상화해 해외로 탈출하는 공장을 불러들이고,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