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도 무국적자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중국 국적을 얻은 김구나 미국 국적을 딴 안창호, 서재필과 달리 “국가가 없는데 무슨 국적이냐”며 독립할 때까지 남의 국적을 거절했다. 국경을 넘나들 때마다 복잡한 절차를 밟으면서도 미국 시민권을 따라는 권유를 뿌리쳤다. 단재 신채호도 죽을 때까지 무국적으로 살았다.
굴곡진 역사의 상흔 때문일까. 식민통치에서 벗어났지만 무국적의 비애는 계속됐다. 일본이 외국인 등록령을 실시할 때 재일동포들은 한반도에 정부가 수립되지 않아 조선 국적으로 등록해야 했다. 한일수교 후 일본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지만 분단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사라진 나라’ 조선을 고집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사할린 1세대 한인 등 호적 없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지금도 많다.
무국적자는 여권도 투표권도 없고 교육·의료 혜택도 못 받는다. 자유로운 이동이나 합법적인 고용도 불가능하다. 1차대전 이후 무분별한 이민 문제를 막기 위해 국가간 비자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마저도 국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지역분쟁이 심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시리아 등에선 더 심각하다. 전 세계에 1000만명 이상이 국적 없이 살고, 난민촌에서는 10분에 한 명씩 국적 없는 아이가 태어난다고 한다.
보다 못한 유엔이 팔을 걷고 나섰다. 1954년 ‘국적 없는 사람들의 지위에 대한 협약’을 채택한 지 60년이 된 것을 기념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환기시키는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 출신 우르두어 사용자 30만명에게 시민권을 줬고, 키르기스스탄은 옛 소련 이주민 6만5000명을 받아들였다. 코트디부아르도 주변국 이주민에게 국적을 줬다. 그러니 희망은 있다. 유엔 캠페인 제목은 ‘나는 소속돼 있습니다(I belong)’다. 애잔한 문구다. 누군가에겐 분명 자유일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속’이 생존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