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대의 경마축제인 멜버른컵이 4일 멜버른 교외 플레밍턴경마장에서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선발된 명마들이 질주하고 있다. 호주관광청 제공
호주 최대의 경마축제인 멜버른컵이 4일 멜버른 교외 플레밍턴경마장에서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선발된 명마들이 질주하고 있다. 호주관광청 제공
새하얀 리무진이 줄줄이 경기장으로 들어온다. 드레스와 꽃 장식 모자로 한껏 치장한 여성들이 차에서 내리자 연미복을 입은 남성들이 달려가 맞이한다. 4일(한국시간) 호주 최대의 경마대회 ‘멜버른컵’이 열린 멜버른 근교의 플레밍턴경마장은 마치 패션쇼장을 방불케 했다. 경기장 곳곳은 장미로 장식됐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15만여명의 관객은 푸른 잔디밭에 둘러앉아 봄빛을 즐겼다.

◆3분17초 만에 3200m 주파

탕! 58억원 '총알馬 레이스'…7억 경마팬 열광
‘탕’ 소리와 함께 24마리의 말들이 출발대를 박차고 뛰어나오자 조용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게이트우드!’ ‘로열 다이아몬드!’ 말들이 코너를 돌아나오자 관람객의 함성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명마와 기수들은 620만호주달러(약 58억원)의 상금을 놓고 3200m 트랙에서 자웅을 겨뤘다.

명마들은 마지막까지 승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접전을 펼쳤다. 우승은 3분17초의 기록을 세운 ‘프로텍셔니스트’에게 돌아갔다. 프로텍셔니스트는 멜버른컵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독일 말이 됐다. 우승 후보였던 일본의 어드마이어 락티가 경기 도중 넘어져 죽자 ‘락티’를 연호하던 일본 관중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54년 역사, 호주 전역이 들썩

이날 호주 전역은 멜버른컵 열기로 달아올랐다. 154년 전통의 멜버른컵이 열리는 11월 첫째 화요일은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주의 공휴일이다. 1861년 첫 대회를 치른 멜버른컵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을 포함해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이날 호주의 직장인들은 친한 동료와 친구끼리 우승마를 맞추는 내기를 하느라 하루 종일 들뜬 분위기였다. 호주 성인의 약 80%가 마권을 구입하고 짜릿한 순간을 즐겼다. 멜버른컵은 호주뿐 아니라 세계 30여국에 생중계돼 7억명의 경마팬이 경주를 지켜봤다.

여자친구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마커스 콜(32)은 “멜버른컵을 위해 석 달 동안 돈을 모았다”며 “직장 동료들과 우승마 맞추기 내기를 해 흥분된다”고 말했다.

◆멜버른컵은 패션 경연장

멜버른컵은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패션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멜버른컵이 열리는 날은 호주의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 방송인, 경제인 등 호주 전역에서 몰려든 명사들이 한껏 멋진 옷을 차려입고 잔치 분위기를 돋운다.

멜버른컵 이틀 뒤인 6일 열리는 ‘오크스 데이’는 여성들의 날이다. 오크스 데이에 플레밍턴경마장에선 패션쇼를 열고 최고의 패션감각을 뽐낸 주인공을 뽑는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는 물론 패션업체들도 이날을 주목한다.

◆경마를 국민오락·세계 축제로

멜버른컵은 호주 최대 축제인 동시에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멜버른 시내의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은 며칠 전부터 동나고 음식점도 손님으로 가득찬다. 멜버른컵을 포함한 약 한 달간 ‘멜버른 스프링카니발’에 참여하는 관광객은 65만명에 이른다.

멜버른컵이 이처럼 세계 최대 경마축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도박의 순기능에 주목한 호주 정부의 힘이 크다는 분석이다. 멜버른컵 중계를 2년간 맡았던 스콧 매슈(45)는 “정부가 합법적인 도박이 국민의 오락거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발생한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멜버른=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