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3억년 전 생겨났다는 은행나무는 천 년 이상 사는 장수 수종이다. 소철,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특히 중국 산둥성 딩린사(定林寺)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살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은행나무를 ‘비조(鼻祖)’라 부른다. 기원전 715년 노나라와 거나라 양국 제후들이 이 나무 아래서 회의를 했다고 전해진다. 영국 큐 왕립식물원에는 1762년에 심은 은행나무가 아직 자라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다. 경기 양평에 있는 용문사 앞 은행나무는 1100살이 넘는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인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앞에도 500살 먹은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다. 지금의 사립대학에 해당하는 서원은 유교를 가르치던 곳이다. 나무 열매가 살구나무의 그것과 닮아 ‘은빛 살구’의 한자로 지어진 은행(銀杏)은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향교 옆에 예외없이 심어져 있다. 조선시대에 읍 단위마다 하나씩 있던 향교는 지방에서 유학자를 양성하던 곳인 점을 볼 때 은행나무는 단순히 오래 사는 나무라기보다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이어온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은행 본점 안에도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뿌리에서 세 개의 줄기로 뻗어올라 그 둘레만 7m가 훨씬 넘어 빌딩 숲 사이에서도 전혀 위축됨이 없다. 우리은행 역사가 올해로 115년이니 4배가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퇴근길에 항상 이 은행나무를 지나며 경외감과 함께 한편으로는 시름에 잠기기도 한다. 수백년 세월의 세찬 풍파를 이겨내고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이보다 더 오래된 ‘천년기업’의 탄생을 꿈꿔본다. 보통 백년기업이라고 하면 한 세기 동안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생존했다는 점에서 대외적 위상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한데, 천년기업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우리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이 수백년을 지속 성장해 천년기업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루기 쉽지 않기에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장수기업이 많아질수록 국가 경제는 건강해진다. 은행나무를 보며 은행의 역할을 고민해본다. 천년은행은 천년기업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천년은행이 되고자 하는 소망에 앞서 천년기업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순우 < 우리금융지주 회장 wooriceo@woorif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