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어음만기 제한 '甲乙관계'에만 적용
정부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 중인 기업 어음의 만기 제한을 ‘갑을관계 거래’에만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간 제한은 2개월 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어음만기제한특별법’(가칭) 제정을 준비 중인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모든 어음의 만기를 제한할 필요는 없다. 여력이 있는 회사끼리는 1년이든 2년이든 알아서 하면 된다”며 “일감을 주는 대기업과 하도급을 받는 중소기업 간 거래처럼 갑을관계 거래에만 만기 제한을 적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음법을 개정하면 모든 어음이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갑을관계 간 어음으로만 한정하려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어음 만기에 특별한 제한이 없으며 대부분 업계 관행에 따른다. 지난 7월 중소기업중앙회가 회원사 16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50.8%는 “대금을 회수하는 데 평균 3개월 이상 걸렸다”고 답했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은 현금 대신 어음을 잔뜩 들고 있어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중기중앙회 설문조사에서 72.2%는 “어음 대금을 늦게 받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법무부는 이달 말 전문가 의견 수렴을 시작으로 제도 개선 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오는 29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어음만기제도 개선방안’ 포럼을 열고 산업계 등의 의견을 듣는다. 포럼이 끝나면 법무부 산하에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실무 작업을 한다.

업계는 어음 만기 제한이 중소기업 자금 흐름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업 간 거래에서 어음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로 지난해 결제 금액은 3771조원이었다. 최복희 중기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중소기업은 현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만기를 짧게 주면 융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주에서 건축자재 공장을 운영하다가 자금난으로 폐업한 A씨는 “장기 어음을 받다 보니 수금이 늦고 결국 갚을 어음도 못 주는 악순환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아직 논의할 부분도 많다. 우선 갑을관계를 어떻게 정의할지가 관건이다. 지금까지의 비슷한 입법 사례를 고려하면 매출액과 종업원 수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변수를 어떻게 적용할지와 제한 기간을 어떻게 할지도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도 하도급 대금을 60일 이내에 주도록 했는데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만기 제한을 일부 기업이 아닌 모든 기업에 적용해야 한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갑을관계에만 적용하면 그 기준에 맞춰 혜택을 받기 위해 편법을 쓰는 기업이 나올 수 있고 주제 특성상 정쟁에 휘말리기 쉽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