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업(業)의 본질은 무엇인가. 단순히 판매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임대업이라고 할 것인가. 서울 명동의 길 건너 소공동 모퉁이에 대한민국 최고의 백화점을 만들어 낸 것은 롯데다. 1000여개 점포가 깃들어 있다. 그들은 롯데가 쌓아올린 무형의 가치에 편승한다. 매출의 30%가 넘는 다락 같은 입점료는 그 대가다. 판매상들은 치열하게 경합하면서 입점료를 형성해 간다. 그들은 경쟁을 혐오하지만 경쟁이 있기에 기회를 얻는다. 그게 없다면 조폭을 동원하거나 권력과 연줄을 세워야 한다. 이 점이 시장경제의 정의로움이다. 임대료는 다른 모든 시장의 결정들과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것을 가져야 할 사람이 갖는 것”이라고 정의(正義)를 정의할 때 염두에 두었던 바로 그 규칙이다.

백화점이 만들어내는 위치와 시간의 가치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는 명백하다. 장소적 특성에서 오는 영업권을 바닥권리라고 부른다면 이는 백화점 측이 갖는 것이 정당하다. 거리의 독립적 임차상인이 쌓아올린 무형의 가치, 예를 들어 단골손님이라든가 ‘저 모퉁이의 맛있는 커피점!’이라는 인지적 가치, 즉 명성 등은 당연히 상인 개인에게 귀속한다. 상인의 땀과 노력, 사업수완의 집대성이 영업 권리금이다. 그러므로 로드숍의 권리금은 전적으로 그것을 인정하는 상인의 ‘개인적’ 가치다. 상가 번영회라면 어떨까. 조폭들은 번영회를 차지한 다음 갖은 명목으로 상가 수익의 일부를 뜯어간다. 주먹패 이정재가 동대문 상권을 쥐락펴락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것이다.

자영업을 보호하기 위해 권리금을 법제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최근 발표됐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게 비친다. 그러나 임차인과 임대인은 정부가 생각하는 그런 적대적, 영합적 (零合)관계가 아니다. 전체 상가 계약의 3% 수준에서 분쟁이 발생한다지만 3% 아닌 30%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상인과 임대인의 이익의 방향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외견상으로는 한쪽의 큰 이익이 다른 쪽의 작은 몫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해가 같다. 임대료는 업황의 지표이면서 동시에 사업전망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다. 적자를 보면서도 강남역 사거리에 깃발 점포를 내는 것조차 그렇다. 이들 점포는 “우리는 고객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백화점 입점 업체도 굳이 로드숍을 낸다. 트리클다운하는 후광효과를 노린 것이다.

빌딩 가격은 기대 임대료 수입 총액의 현재 가치다. 임대인도 시장가격의 수용자(price taker)다. 전국적으로 경쟁하는 상업용 임대빌딩은 114만3000동이다. 이 빌딩들을 임차상인들이 다 채우지 못한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현재 상업용 빌딩의 공실률은 10.3%다. 단순계산으로 11만채나 비어 있다. 2011년 7% 선을 바닥으로 그래프는 가파른 상승세다. ‘어딜 가도 공급과잉!’이라는 푸념은 임대인에게도 성립한다. 부동산 투자의 종착역이 상가투자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거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매장 임대수익률은 연 5%다. 2011년 6.5%에서 2012년 5.25% 2013년 5.15%로 낮아지고 있다. 빌딩 가격의 하락까지 감안하면 더 낮아진다. 공실률이 10% 이상인 상황에서 임대와 임차의 힘의 관계는 쉽게 역전된다. 최근에는 몇 개월치 렌트프리를 줄 것인지를 놓고 임대인은 한숨을 쉰다.

상가주인은 지역상권까지 고려하면서 상가의 구성을 기획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그것에 노동을 투입하여 무언가를 생산하게 되면 그 자의 소유물이 된다”고 존 로크는 썼다. 그렇게 기획력이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한다. 영업권리금은 상인들 간에 땀의 가치를 거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영(零)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보호될 수 없다. 임대인이 임차인을 착취한다면 임대인은 은행에 착취당한다. 은행은 또 빌려준 사업자금을 떼인다. 그렇게 인생도 사업도 고단하다. 그러나 모두가 한 배를 탔다. 그러니 정부는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