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의 '그늘'…주부는 체감 못하고 당국도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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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

서울특별시에서 운영하는 ‘물가 정보’ 사이트(mulga.seoul.go.kr)에 이달 초 올라온 따끈따끈한 정보다. 게시글 조회수는 대부분 10건 이하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연 1%대 상승률을 2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기록적인 저물가인데도 서민들은 여전히 ‘고물가로 힘들다’고 한다. 국민들이 향후 물가상승률을 예상한 기대인플레이션은 연 2% 후반을 늘 맴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인플레이션 보고서’에서 그 원인을 분석했다. 예컨대 기대인플레이션을 가장 높게 보는 연령층은 20~30대다. 집값이 문제였다. 기대인플레 설문에 참여한 이들 연령층의 절반 이상이 전·월세에 살고 있다. 40대 이상 응답자의 70~90%가 자기 집을 가진 것과 뚜렷한 차이다. 미래에 집을 사야 할 젊은 층은 부동산값이 오를 때마다 물가 불안을 체감한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의 주거비엔 전·월셋값만 포함되고 자가주택 가격은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비공식적으로는 통계청도 ‘자가주거비용 포함 물가지수’를 집계한다. 자기 집에 월세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내야 할 금액을 포함한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연 2.2%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1.4%를 훌쩍 뛰어넘는다.
성별로는 여성의 기대인플레가 연 3.0%로 남성(2.9%)보다 약간 높다(2013년~2014년 상반기). 박세령 한은 물가분석팀장은 “매일 생필품을 구매하는 주부가 물가 상승에 더 민감하다”며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 대부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소득별로는 저소득층이 물가를 더 높게 느낀다. 우리경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주거·광열·수도의 물가상승률(2010~2013년)이 12개 품목 분류 중에서 가장 높은 연 4.3%에 달했다. 반면 고소득층 지출이 많은 교양·오락, 가구집기의 물가상승률은 연 1.1%, 2.6%에 그쳤다.
물가 당국도 이젠 저물가가 별로 반갑지 않다. 과거 불황기의 일본처럼 저물가는 디플레이션의 전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통화정책의 목표(연 2.5~3.5%)로 삼고 있는 한은은 고민이 깊다. 이쯤이면 기준금리를 내려도 괜찮다는 압박성 발언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물가도 안정되는 모습을 보인다”며 “한국은 1980년대 고성장기에 10%대의 고물가를 경험하면서 아직 물가 공포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과 자영업자의 가격 정책을 압박한 것도 ‘물가 트라우마’의 결과다. 독일 경제의 초인플레 트라우마, 미국 경제의 대공황 트라우마처럼 쉽게 사라지기 어려운 모양이다.
당국의 관심사는 최근 담뱃값 인상 논의다. 인상되면 물가지표가 자연스럽게 상향될 전망이다. 한은 관계자는 “전기요금 등 공공서비스 요금이 머지않아 현실화되면 지표와 체감물가 격차가 더 줄어들 것”이라고 봤다. 물가는 낮을수록 좋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