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 '법정모독' 판결에 정면 대응

아르헨티나 정부가 자국 은행을 통한 채무 우회상환에 나섰다.

아르헨티나 경제부는 과거 채무조정이 이루어진 채권자들에 지급할 이자 대금 1억6천100만 달러를 아르헨티나의 나시온 피데오코미소스(Nacion Fideocomisos) 은행에 예치했다고 30일(현지시간) 밝혔다.

경제부는 성명에서 "이자 대금 예치는 채권자들에 대한 채무 변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채권자들이 30일 안에 나시온 피데오코미소스 은행에서 이자를 받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으면 아르헨티나는 또다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지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약 1천억 달러의 부채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했고, 이후 2005년과 2010년 협상에서 채권단 대부분과 70%의 채무를 탕감하는 조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NML 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 2개의 미국 헤지펀드는 소송을 내 13억3천만 달러의 채무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미국 뉴욕 주 맨해튼 지방법원의 토머스 그리사 판사는 별도 소송에서 아르헨티나가 2개 미국 헤지펀드에 빚을 갚지 않으면 다른 채권자에 대한 채무 변제도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지난 6월 말까지 채권단에 총 5억3천500만 달러의 이자를 갚지 않아 '기술적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그러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그리사 판사의 판결이 적용되는 미국의 뱅크 오브 뉴욕 멜론 대신 자국 은행을 통해 합의 조정된 채무의 이자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채무 우회상환' 법안을 마련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 법안이 채무조정에 합의한 92.4%의 채권자뿐 아니라 합의하지 않은 7.6%의 채권자들에게도 채무 상환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리사 판사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국 헤지펀드에 채무 전액을 갚지 않고서는 다른 채권자에 대한 채무 변제가 불가하다는 자신의 판결을 불법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며 전날 채무 우회상환 법안이 법정모독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리사 판사의 이번 판결이 국제법과 유엔헌장, 미주기구(OAS) 헌장을 위반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