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핀란드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 가보니…"모든 정보 공개…주민들 데모할 이유가 없어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250㎞ 떨어진 에우라요키시(市). 인구 6000명의 작은 이 도시에 거대한 지하동굴을 파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공사다. 수직으로 450m 깊이까지 뚫린 지하동굴에 차를 타고 437m까지 들어갔더니 기압 탓에 귀가 먹먹해졌다.

공사현장은 사용후핵연료(원자로에서 4~6년 사용한 핵연료봉 등) 영구처리 테스트용 연구시설을 만드는 곳이다. 내년 1월께 정부 허가가 나면 바로 옆에 연구시설과 똑같은 구조와 크기의 지하시설이 만들어진다. 사용후핵연료를 거기에 영구적으로 묻는다.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만 35억유로(약 4조6852억원).

방사능폐기장 설치 얘기만 나와도 지역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한국과는 너무도 달랐다. 핀란드 정부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때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 논의를 시작했다. 1978년부터 전 지역의 지질을 조사해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 부지를 선정했다. 에우라요키시는 후보지 거부권이 있었지만 행사하지 않았다. 지역주민들은 반대시위 한 번 벌이지 않았다. 최종 부지로 확정된 뒤 정부로부터 특별 지원성 예산도 받지 않았다.

하리 히티오 에우라요키 시장은 유치 조건으로 중앙정부의 위로성 예산을 왜 받아야 하는지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유치로 도시에 기업이 들어오고, 고용이 늘었는데 그 자체가 혜택이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핀란드가 운영 중인 네 개 원전 중 두 개가 에우라요키에 있다.
핀란드 에우라요키시(市)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처리시설인 온칼로. 지금은 연구시설을 짓고 있지만 내년 1월 정부의 허가가 나오면 바로 옆에 실제 영구처리시설을 짓는다. 뒤쪽으로 에우라요키에 자리한 원자력발전소 두 기가 보인다.
핀란드 에우라요키시(市)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처리시설인 온칼로. 지금은 연구시설을 짓고 있지만 내년 1월 정부의 허가가 나오면 바로 옆에 실제 영구처리시설을 짓는다. 뒤쪽으로 에우라요키에 자리한 원자력발전소 두 기가 보인다.
사업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받는 핀란드 정부의 노력도 주효했다. 헬싱키에 있는 핀란드 원자력규제기관인 방사선원자력안전기구(STUK)의 리스토 팔템마 규제총괄책임자는 “핀란드 정부는 정부에 불리한 정보도 숨기지 않고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며 “신뢰를 얻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잃는 건 한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STUK는 웹페이지 등을 통해 모든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어떤 질문에도 정보를 제공하며 답변한다.

에우라요키고등학교에 다니는 에시 헤이로넨 학생은 “STUK가 제공하는 정보가 많고, 그 정보는 거짓일 리 없다”고 말했다. 유치 당시 찬반투표에서 에우라요키 시의회 재적의원 27명 중 20명이 찬성표를 던진 배경이기도 했다.

핀란드 정부가 지질조사를 시작한 1978년 한국에서는 첫 원전인 고리1호기를 가동했다. 상당한 진통을 겪은 끝에 2005년에서야 원전에서 사용한 작업복 등 방사능 함유량이 미미한 중저준위성 물질을 처리할 방폐장 설치 지역으로 경북 경주를 확정했다. 이후 경주엔 55개 사업, 3조5000억원에 이르는 위로 형식의 지원금이 책정됐다.

그런 사이 한국엔 사용후핵연료(고준위)가 갈 곳을 잃은 채 쌓여 갔다. 작년 말 현재 한울·월성·고리·한빛원전 등에 모아둔 게 총 1만3254t에 이른다. 2년 후인 2016년부터는 고리원전부터 더 이상 쌓을 공간이 없어진다. 하지만 아직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은커녕 후보 부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에우라요키에 동행한 이종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이 “핀란드는 한국 원전의 롤모델”이라고 높이 평가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헬싱키=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