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의 레슬러' 김현우(25·삼성생명)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레슬링의 역대 세 번째 그랜드슬램 대기록에 도전한다.

김현우는 그동안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무대에서 한국에 금메달의 영광을 안겨 온 한국 레슬링의 스타 계보를 잇는 선수다.

한편으로는 영광의 세월을 뒤로하고 침체에 빠져 있던 한국 레슬링에 새로운 희망을 안긴 '부활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김현우가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둔 2010년이었다.

한국 레슬링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32년 만에 '노 골드'의 참패를 당한 이후 한창 세대교체에 나서던 시기였다.

당시 레슬링 대표팀은 광저우에서도 금메달 하나 건지지 못한 채 무너졌다.

대표팀 데뷔 첫해 아시아선수권대회 정상을 정복한 당찬 새내기이던 김현우도 2회전 탈락이라는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이때의 과감한 세대교체가 결국 부활의 씨앗이었음을 김현우는 2년 만에 증명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부러진 엄지손가락과 퉁퉁 부은 눈으로 정상에 올라 한국 레슬링에 8년 만의 금메달을 안긴 것이다.

당시 김현우는 금메달을 확정 짓고는 매트 한가운데에 태극기를 펼친 뒤 큰절을 올리는, 젊은 선수답지 않게 진중한 세리머니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 세리머니와 함께 김현우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렸다.

김현우는 이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를 연달아 제패하며 적수가 없는 레슬러로 성장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올해 7월까지 2년간,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김현우는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았다.

김현우의 불패 기록은 7월 25∼27일 루마니아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에게 지면서 중단됐지만, 이 경기에서는 상당한 반칙과 편파 판정이 있었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거침없는 김현우의 행보가 더욱 놀라운 이유는, 그가 런던올림픽 이후 체급을 한 단계 올렸다는 데 있다.

런던올림픽에서 그레코로만형 66㎏급 금메달을 따낸 김현우는 2013년부터 74㎏급(현 75㎏급)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레슬링 선수들이 많게는 10㎏씩 고통스럽게 감량해 가며 낮은 체급에 출전하는 것은 그만큼 한 체급이 올라갔을 때 겪어야 하는 힘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두 체급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심권호 대한레슬링협회 이사는 "두세 차례는 한계를 넘어야 한 단계 위 체급에 도전할 수 있다"면서 "나도 체급을 올리고 1년 정도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김현우는 체급을 상향한 바로 그 해에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를 정복했다.

체급 변경에 실패한다면, 이룰 만큼 이룬 젊은 선수가 체중 감량의 고통에서 벗어나 '편하게' 운동을 하려는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란듯이 새 체급에서도 성공을 거둠으로써, 김현우는 다시 한 번 실력으로 모든 의심을 불식시켰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김현우는 당연히 대표팀의 금메달 후보 '0순위'로 꼽힌다.

이번에 정상에 오른다면 박장순과 심권호에 이어 한국 레슬링의 역대 세 번째 그랜드슬램(올림픽·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대회·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지도자들에게 '기량과 훈련 자세, 인성 모두에서 최고인 선수'라는 평가를 듣고, 서글서글한 미소와 성의 있는 답변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을 팬으로 만들어버리곤 하는 젊은 선수가 한국 레슬링의 '새로운 전설'로 올라설 날이 머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