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런던에서 열린 ‘BBC프롬스 페스티벌’.
27일 런던에서 열린 ‘BBC프롬스 페스티벌’.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7일(현지시간) 유럽 투어의 종착지 BBC프롬스를 통해 ‘클래식의 수도’ 영국 런던에 입성했다. 6000여 관중이 스탠딩석인 아레나를 시작으로 로열 앨버트홀의 원형 공간을 가득 메웠다.

프롬스는 오랫동안 클래식의 변방에 인색했다. 작년까지 프롬스에 섰던 아시아 오케스트라는 NHK심포니(1972·2001년)와 세이지 오자와가 설립한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1990년) 단 두 곳이었다.

이날 연주한 모든 곡은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녹음한 작품이다. 서울에서처럼 편하게 연주하자는 메시지이자 음반과 투어로 악단의 가치를 제고시키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보였다.

한마디로 서울시향의 격을 보여준 공연이다. 큰 무대라고 긴장하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골을 넣고 일본 팬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던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처럼 단원들의 자태에는 프롬스에 오르는 다른 유럽 오케스트라와 대등하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드뷔시 ‘바다’는 찬연히 부서지는 파도와 바람의 유희를 선명하게 시각화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기존 러시아 오케스트라의 권위에 기죽지 않은 독자적인 해석이었다.

요즘 프롬스는 글로벌화된 오케스트라 사운드보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빚어내는 독창적인 조합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들을수록 흥미를 느끼게 하는 현대음악을 접하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가.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이 한 예다.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진은숙은 악기의 비르투오시티(virtuosity·고도의 연주 기교)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다 알고 있다”고 했던 생황 연주자 우웨이는 로열 앨버트홀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들숨과 날숨을 교환했다. 진은숙은 6000여 관객의 성원을 받으며 활력을 충전했다.

본 공연이 끝나고 아레나 관객들이 발을 구르며 정명훈을 불러냈다. 정명훈은 “프롬스의 스타는 관객”이라고 화답하며, 멋들어진 브람스 헝가리 춤곡 1번을 선사했다. 실력을 입증했다. 이제 필요한 건 재초청을 일구어낼 행정 역량이다.

한정호 <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