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새정치聯, 선거 패배 후 투쟁이미지 벗겠다더니…강경파에 휘둘려 '거리투쟁' 되풀이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해 8월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치고 ‘노숙 투쟁’을 시작했다. 대신 전병헌 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의원 전원은 국회에서 24시간 먹고 자며 여당을 압박하는 ‘원내외 병행 투쟁’을 벌였다. 당시 이슈는 국가정보원, 군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이었다. 핵심 증인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청문회 출석을 담보해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내 강경파가 폭발했다. 극한 투쟁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김 전 대표는 장외로 떠밀려 갔다.

이번 ‘세월호 특별법’ 정국도 당시와 비슷하다. 두 차례에 걸친 여야 합의가 유가족과 당내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친노(노무현)계도 비노계도 협상을 이끈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에게 등을 돌렸다. 친노는 유가족 뜻에 못 미치는 협상 결과에 대해, 비노는 합의안을 설득하지 못한 정치력을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겸임하는 ‘막강 권한’에도 스스로 내린 결단을 두 번이나 뒤집어야 했다.

“재재협상은 없다, 투쟁 이미지를 벗겠다”고 한 박 위원장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카드는 장외투쟁이었다. 방식도 1년 전과 다르지 않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24시간 국회 농성에 들어갔다.

1년 전 전병헌 전 원내대표 역시 국회 사무실에 마련된 24시간 상황실에서 쪽잠을 자며 원내 투쟁을 진두지휘했다. 24시간 비상 대기령이 떨어진 의원들도 사무실에 침낭과 야전 침대를 갖다 놓느라 부산을 떨었다. 물론 이 같은 결기는 채 한 달을 못 갔다. 피로가 쌓인 의원들이 속속 이탈했고 소리소문없이 흐지부지됐다.

당시와 다른 점도 있다. 김 전 대표는 당내 강경파를 달래고 제1야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혼자 ‘노숙 투쟁’을 선택했다.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비롯한 국회 의사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반면 올해는 처음 도입할 예정이던 ‘분리 국감’이 전면 백지화됐다. 정기국회도 파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장외투쟁이 세월호 특별법과 박 위원장의 입지 강화를 제외하고 무슨 명분이 남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호기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