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다시 통일 아젠다를 꺼내들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박근혜 정부의 국방·통일·외교 정책을 종합한 ‘국가안보전략’ 정책서를 어제 내놨다. 정책서에선 여건이 성숙되면 기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군사적 신뢰 구축을 통한 군축협의 가능성 등을 제시해 관심을 모은다. 지난 6일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에서 민생 인프라 구축을 논의했고, 11일 남북고위급 접촉을 위한 통지문을 보내 북한이 원하는 5·24 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도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기간 경색된 남북관계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평화의 메신저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방한하고 내일은 8·15다. 세계의 이목이 쏠릴 때 평화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박 대통령이 연초 통일대박론, 3월 드레스덴선언으로 통일 공론화의 불씨를 지폈지만 세월호에 묻혀 아쉬움도 클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고령화되는 이산가족의 조속한 상봉도 더 미루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아무리 절실해도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청와대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한 북측의 책임있는 조치 등 이런저런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북한은 달라진 게 전혀 없지 않은가. 올 들어 쏘아댄 미사일이 260여발이고, 4차 핵실험 위협도 여전하다. 고위급 접촉 제안에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되레 한민구 국방장관의 ‘적 도발 시 응징하라’는 원론적 지시에는 “죽지 못해 안달” “미친개”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북한이다. 다른 것은 그대로인데 욕설만 다양해진 듯하다.

국민 다수는 더 이상 퍼주면서 질질 끌려가길 원치 않는다. 핵을 무기삼아 벼랑 끝 전술을 펴는 예측불허의 상대방에게 우리의 원칙이 확고함을 각인시키는 것보다 나은 대처방안은 없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 평화도, 신뢰구축도 모래성일 뿐이다. 우리측의 전향적인 제안에 대해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하고, 국면전환용이란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