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古지도 수집, 역사 분쟁 '자료의 힘' 일깨웠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빛회 나눔봉사대상 최고대상 받은 김혜정 혜정박물관장
국내외 장애인 등 20년째 지원
지도 수집도 엄마의 마음으로
간도·동해 특별전 수시로 열어
국내외 장애인 등 20년째 지원
지도 수집도 엄마의 마음으로
간도·동해 특별전 수시로 열어
“남들이 저보고 ‘태어난 지 1주일도 안 된 눈 못 뜬 강아지’라고 합니다. 이해 안 될 정도로 순수하고 해맑게 산다고요.”
최근 대한민국한빛회가 수여하는 제3회 대한민국나눔봉사대상 최고대상을 받은 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장·석좌교수(사진)의 말이다. 2002년 혜정문화연구소로 문을 연 혜정박물관은 국내 최초, 최대의 고지도 전문 박물관이다.
일본 도쿄에서 자란 김 관장은 1972년 12월 재일동포 여성경제인 대표로 초청받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외조모가 있던 제주도에 처음 갔다. 빈곤에 허덕이던 조국을 본 뒤 애달픈 마음을 안고 돌아간 그는 약 10년 뒤인 1981년 한국을 다시 찾아 정착했다. 1985년 제주에 국내 1호 중증장애인복지시설 ‘혜정원 아가의 집’ 인가를 받고 1988년 개원했다.
“세상 사람은 두 종류, 남자 여자가 있죠. 난 여자고. 조국에서 무엇을 해 여자로서 가장 칭찬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소외된 아가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어요.” 재일동포 2세인 부친이 ‘더 가질수록 더 사회와 나누라’고 늘 가르친 영향도 컸다. 그는 몽골, 베트남 현지에도 보육원을 세워 양국 간 국교 수립에도 기여했다.
사실 김 관장은 일본에서 마케팅연구소, 학원 등을 운영하며 잘나갔다. 하지만 혜정원 등을 세우며 그동안 번 돈을 몽땅 봉사사업에 쏟았다. 혜정원에는 ‘선(善)하게, 선하게, 다시 선하게’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는 “모든 일의 시작, 과정, 마무리를 항상 선하게 하자는 뜻”이라며 “선하고 긍정적인 생각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또 모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김 관장이 고지도를 처음 접한 건 도쿄공립여대 문학부에 다닐 때 헌책방에서다. 17~18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여러 빛깔의 세계지도에 프랑스어로 ‘동해(mer de coree)’가 표기된 것을 보고 한눈에 빠져들었다. 그 이후 취미로 시작한 지도 수집이 지금까지 40년간 이어졌다. 그는 “순수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로 찾아간다는 점에서 지도 수집 역시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의 마음과 똑같다”고 했다.
김 관장은 “지도 수집이 역사 분쟁에 휩싸인 국가 내 지식인들의 양심을 깨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1844년 미쓰쿠리 쇼고가 프랑스 지도를 참고해 제작한 ‘신제여지전도’에는 동해를 ‘조선해’로 선명히 표기해 놨고, 1785년 일본에서 제작된 ‘삼국접양지도’에는 독도 영유권이 조선으로 명기돼 있다. “이런 걸 일본 지식인들에게 보여주면 아무 말도 못 해요. 시끄럽게 우리 거라고 떠들 게 아니라 역사적 근거를 보여줘서 가슴으로 수긍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100여개국을 홀로 누비며 평생 수집한 자료의 ‘힘’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간도 특별전’ 등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행사도 수시로 열고 있다.
경희대 중앙도서관에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이 학교 설립자인 고(故) 조영식 이사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김 관장의 마지막 소원은 좀 더 접근성이 좋은 곳에 단독 건물을 짓는 것. “영유권 분쟁 같은 건 정치권에 맡기면 싸움만 나지 될 일도 안 돼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역사를 좇는 민간 외교관들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자료들이 음지에서 더 많이 나올 수 있게 많은 분이 힘을 줬으면 좋겠어요.”
용인=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최근 대한민국한빛회가 수여하는 제3회 대한민국나눔봉사대상 최고대상을 받은 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장·석좌교수(사진)의 말이다. 2002년 혜정문화연구소로 문을 연 혜정박물관은 국내 최초, 최대의 고지도 전문 박물관이다.
일본 도쿄에서 자란 김 관장은 1972년 12월 재일동포 여성경제인 대표로 초청받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외조모가 있던 제주도에 처음 갔다. 빈곤에 허덕이던 조국을 본 뒤 애달픈 마음을 안고 돌아간 그는 약 10년 뒤인 1981년 한국을 다시 찾아 정착했다. 1985년 제주에 국내 1호 중증장애인복지시설 ‘혜정원 아가의 집’ 인가를 받고 1988년 개원했다.
“세상 사람은 두 종류, 남자 여자가 있죠. 난 여자고. 조국에서 무엇을 해 여자로서 가장 칭찬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소외된 아가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어요.” 재일동포 2세인 부친이 ‘더 가질수록 더 사회와 나누라’고 늘 가르친 영향도 컸다. 그는 몽골, 베트남 현지에도 보육원을 세워 양국 간 국교 수립에도 기여했다.
사실 김 관장은 일본에서 마케팅연구소, 학원 등을 운영하며 잘나갔다. 하지만 혜정원 등을 세우며 그동안 번 돈을 몽땅 봉사사업에 쏟았다. 혜정원에는 ‘선(善)하게, 선하게, 다시 선하게’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는 “모든 일의 시작, 과정, 마무리를 항상 선하게 하자는 뜻”이라며 “선하고 긍정적인 생각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또 모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김 관장이 고지도를 처음 접한 건 도쿄공립여대 문학부에 다닐 때 헌책방에서다. 17~18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여러 빛깔의 세계지도에 프랑스어로 ‘동해(mer de coree)’가 표기된 것을 보고 한눈에 빠져들었다. 그 이후 취미로 시작한 지도 수집이 지금까지 40년간 이어졌다. 그는 “순수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로 찾아간다는 점에서 지도 수집 역시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의 마음과 똑같다”고 했다.
김 관장은 “지도 수집이 역사 분쟁에 휩싸인 국가 내 지식인들의 양심을 깨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1844년 미쓰쿠리 쇼고가 프랑스 지도를 참고해 제작한 ‘신제여지전도’에는 동해를 ‘조선해’로 선명히 표기해 놨고, 1785년 일본에서 제작된 ‘삼국접양지도’에는 독도 영유권이 조선으로 명기돼 있다. “이런 걸 일본 지식인들에게 보여주면 아무 말도 못 해요. 시끄럽게 우리 거라고 떠들 게 아니라 역사적 근거를 보여줘서 가슴으로 수긍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100여개국을 홀로 누비며 평생 수집한 자료의 ‘힘’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간도 특별전’ 등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행사도 수시로 열고 있다.
경희대 중앙도서관에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이 학교 설립자인 고(故) 조영식 이사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김 관장의 마지막 소원은 좀 더 접근성이 좋은 곳에 단독 건물을 짓는 것. “영유권 분쟁 같은 건 정치권에 맡기면 싸움만 나지 될 일도 안 돼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역사를 좇는 민간 외교관들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자료들이 음지에서 더 많이 나올 수 있게 많은 분이 힘을 줬으면 좋겠어요.”
용인=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