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한전부지 '투전판 입찰' 될라
최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매각작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강남권 노른자위 땅이어서 국내외 대기업들의 인수전이 달아오르고 있어서다. 국내에선 현대자동차·삼성그룹 간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 중국 녹지그룹,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 등 해외 기업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인수전 과열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돈 놓고 돈 먹기식의 투전판 입찰로 변질되면 돌이키기 힘든 후유증을 앓을 수 있어서다.

‘묻지마 입찰’ 과열 조짐

한전은 이달 말 입찰공고를 내고 연말 이전까지 땅 주인을 찾겠다고 밝혔다. 매각은 최고 땅값을 써낸 업체가 주인이 되는 공개경쟁입찰로 진행된다. 막대한 부채 해소를 절대과제로 안고 있는 한전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이 땅은 축구장 12개 규모(7만9342㎡·2만4000여평)에 작년 장부가액이 2조73억원, 공시지가는 1조4837억원(3.3㎡당 6171만원)이다. 인수전이 가열되면 공시지가보다 2~3배 비싼 3조~4조원 정도는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룹 본사를 포함한 ‘글로벌 복합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밑그림도 공개했다. 반면 삼성그룹은 조용한 자세로 ‘신중한 인수전략’을 펼치고 있다. 과열 분위기를 조성해봤자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해외 업체가 안 붙으면 국내 그룹 간 2파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자본에 제3의 국내 업체까지 가세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제3의 경쟁자 출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입찰자격이 개인 법인 공동입찰 등 누구나 가능해서다. 매수대금도 1년 분납을 허용했다. 이로써 무역협회 등도 컨소시엄 파트너 물색에 나서고 있다.

한전은 매각작업 흥행 조짐에 흐뭇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심권 공공용지 매각이 투전판 입찰로 흐르면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묻지마 과열입찰’의 후유증은 9년 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있었던 ‘뚝섬 상업용지 매각사례’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뚝섬 상업용지 ‘판박이’ 우려

시는 옛 뚝섬경마장 일대 상업용지 3개블록(5만4450㎡·1만6560여평)을 공개경쟁입찰에 부쳐서 당초 낙찰예정가(5270억원)보다 2배 이상 높은 1조1262억원에 팔았다. 입찰경쟁률도 평균 9.3 대 1에 달했다. 개발업체들이 부동산시장 활황 분위기에 취해 과열경쟁에 나서면서 국공유지 매각사상 낙찰가격으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일부 개발업체들은 잔금을 못 내 수백억원의 계약금을 떼였고, 결국 부동산시장에서 사라졌다. 대기업들도 땅값 마련에 쩔쩔맸다. 부지 매각 9년이 지났지만 전체 부지 세 곳 중 한 곳만 간신히 개발됐다. 비싼 땅값에 사업성이 떨어진 탓이다. 땅값을 한껏 챙긴 서울시도 좋을 게 없다. 도심권 핵심부지가 도시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제때 개발돼야 하는데, 10년 가까이 멈춰서 있기 때문이다.

투기성 해외자본의 무차별 진입도 위험스러울 수 있다. 이들이 자본이익 회수에만 치우친 개발에 나설 경우 도시의 공공성 훼손과 난개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서울시가 기부채납비율을 40%까지 높여 놓긴 했다. 그래도 해당지역에 대한 공생개념의 개발계획을 세워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관리가 필요하다.

박영신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