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기관 10명 중 9명 '나홀로' 이사…'기러기'만 날아든 혁신도시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는 김모 연구사는 지난달 말부터 부인과 고등학생인 아들딸과 떨어져 전북 전주시 효자동 서부신시가지에 원룸을 얻어 살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1일 경기 수원시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지정된 전주시로 이전을 마무리했다. 수원 권선구에 살고 있던 김 연구사는 고심 끝에 ‘기러기 아빠’가 되기로 결정했다. 전북혁신도시에 들어서는 유일한 고등학교인 혁신고(가칭)는 내년에나 개교할 예정이다. 김 연구사는 “고3인 아들과 고1인 딸을 차마 전학시킬 수 없었다”며 “자녀들이 수도권 대학에 입학하면 앞으로도 10년가량은 기러기 아빠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본지 4월24일자 A1, 5면 참조

지난해부터 수도권 115개 공공기관이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잇따라 이전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가족동반 이주율은 10%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인프라로 가족동반 이주 기피

公기관 10명 중 9명 '나홀로' 이사…'기러기'만 날아든 혁신도시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초까지 혁신도시로 이전을 마무리한 공공기관은 전체 이전 예정기관 115곳 중 32.2%인 37곳에 이른다. 부산혁신도시의 경우 국립해양조사원, 영화진흥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4개 기관이 지난해 이전을 마쳤지만 전체 325명 중 18.5%인 60명만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부산시는 예정된 13개 공공기관의 직원이 모두 부산으로 이전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사는 가구가 20% 정도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8개 기관의 이전이 예정된 울산시는 이달 초까지 5개 기관의 입주가 마무리됐다. 울산시는 지금까지 이전한 기관의 임직원 1700여명 중 약 10%만 가족과 함께 이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광주·전남혁신도시로 이전한 우정사업정보센터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 6개 기관의 총 1409명 중 가족과 함께 이주한 임직원은 17.3%인 244명에 불과하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가족동반 이주율이 평균 10%대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한다.

혁신도시 이전 대상 기관 직원들의 가족동반 이주율이 낮은 가장 큰 원인은 수도권보다 교육·생활·문화·교통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대부분 중산층인 이들 직원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혁신도시 내 보육시설이나 중·고교 설립이 지연되는 등 열악한 교육환경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열악한 교통 인프라도 가족동반 이주를 꺼리는 또 다른 걸림돌이다. 부산, 울산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혁신도시가 도심 외곽에 위치한 탓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지자체 유인책에도 효과 미지수

혁신도시가 속한 지자체들은 가족동반 이주를 끌어내기 위해 각종 유인책을 내놓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기관의 임직원에게 이사비 지원, 자녀 전·입학 장려금, 출산축하금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충북도는 가족동반 이주 시 가구당 100만원을 지원하고, 자녀가 도내 고등학교로 전·입학하면 1회에 한해 50만원을 준다. 울산시는 가족이 함께 이주하면 자동차 구입비 50만원과 이사비용 100만원, 고등학교 입학 시 장학금 100만원 등 최대 4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한시적 대책만으로는 가족동반 이주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115곳의 임직원 수는 3만7848명. 정부는 당초 가족동반 이주로 전국 혁신도시의 인구가 27만2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직원들이 가족동반 이주를 기피하는 탓에 혁신도시 증가 인구가 정부 예상치의 10~20%대에 머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홍성호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혁신도시들이 성공하려면 대학이나 국제기구 등의 임팩트 있는 시설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울산·대전·광주=김태현/하인식/임호범/최성국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