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좋지만…너무 나간 서울시 '박원순法'
지난 6일 오전 서울시 신청사 2층 브리핑룸. 당초 예정에 없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시 공무원이 단돈 1000원이라도 받으면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받는다는 이른바 서울시판 ‘김영란법’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날 기자설명회 주요 발표자로 나선 송병춘 서울시 감사관은 기자들의 잇단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 공무원이 행동강령을 어겼을 때는 어떤 조치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송 감사관은 “그런 조치는 없고, 단순한 선언적 규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서울시의 이 같은 방침이 중앙정부의 지침과도 충돌해 법적 다툼이 일어날 소지가 충분하다는 점도 인정했다.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송 감사관은 결국 “사회적으로 여론을 일깨우자는 취지”라고 한발 물러섰다.

서울시의 발표처럼 시 공무원이 단돈 1000원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을 때 대가성 및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처벌받는 건 사실일까. 발표대로라면 기자가 시 공무원에게 1000원어치 음료수를 대접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담당자인 서울시 감사과장의 말은 달랐다. 그는 “일상적으로 허용되는 3만원 이하의 선물이나 5만원 이하의 축의금 등은 받을 수 있다”며 “행동강령에 이 같은 예외조항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내용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에 대해 감사과장은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자 단돈 1000원만 받아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처럼 보도자료에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직비리와 관피아를 근절하겠다는 박 시장의 의지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국회가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처리를 1년 넘게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공직사회 변화에 앞장서겠다는 취지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의지를 뒷받침할 명확한 행정절차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직무관련성 없이 단돈 1000원의 금품·향응을 받은 공무원을 처벌하고, 퇴직 공무원의 민간 기업체 재취업을 원천 금지하기 위해선 상위법인 공직자윤리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서울시 방침이 실효성 없는 단순한 선언적 의미에 그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법적 절차를 도외시하는 건 여의도 정치와 다를 바 없는 아마추어 행정에 불과하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