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오른쪽)와 바오로를 묘사한 12세기 모자이크 작품(시칠리아 몬레알레 대성당 소장). 바다출판사 제공
초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오른쪽)와 바오로를 묘사한 12세기 모자이크 작품(시칠리아 몬레알레 대성당 소장). 바다출판사 제공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이스라엘의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예수는 시몬에게 이렇게 말했다. 4대 복음서 중 하나인 마태복음 16장 18~19절에 기록돼 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천장에 라틴어로 새겨진 이 말씀은 모든 가톨릭교회 조직의 근간이 됐다. 이를 근거로 가톨릭에선 성 베드로 사도로부터 교황권이 시작됐다고 보고 그를 초대 교황이라고 설명한다.

[책마을] 행차 중에 출산한 여자 교황도 있었다?
그러나 《비잔티움 연대기》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영국 작가이자 역사가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베드로가 교회를 건립하면서 수많은 후계자가 그의 뒤를 이어 각각 베드로의 사도직을 상속받도록 돼 있었던 것인가, 그랬다면 사도직은 어느 정도의 지위를 의미했을까. 노리치는 “예수는 베드로에게 로마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없으므로 사도직이 로마의 주교급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신약 어디에도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그 특권을 주교들이 물려받을 수 있다는 암시는 없다”고 주장한다.

노리치가 쓴 《교황 연대기》는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로부터 그 이후 20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교황직에 대한 역사서다. 저자가 25년 이상 구상하고 집필해 81세가 되던 해에 탈고한 최근작이다. 교황들의 업적을 연대순으로 단순 나열하기보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함께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280여명에 이르는 역대 교황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성 레오 교황은 흉노족과 고트족으로부터 로마를 지켰고, 레오 3세는 샤를마뉴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줌으로써 황제 위에 군림하는 교황의 위상을 세웠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교황과 후계자들은 주로 즉위하는 황제들과 맞서서 패권을 다퉜다.

여자 교황 이야기도 있다. 레오 4세의 뒤를 이어 마인츠 태생의 영국인 조안이 2년7개월 동안 교황직을 수행하다 로마에서 선종했는데 그가 여자였다는 이야기다. 여자임을 숨기고 교황이 됐다가 남자 수도자의 아이를 임신했고, 정확한 출산일을 몰라 행차 도중 길에서 출산하는 바람에 여자임이 탄로 났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여교황 조안이 레오 4세와 베네딕토 3세 사이에서 교황직을 수행할 만한 시간적 공백이 없었다”며 “교황 조안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고 설명한다.

십자군 원정을 이끈 인노켄티우스 3세 교황과 아비뇽 유수, 교황청의 부패에 맞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반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던 바오로 3세, 나폴레옹과 투쟁했던 비오 7세도 있다. 20세기에 와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던 베네딕토 15세와 반유대주의자를 혐오했던 비오 12세도 만난다. 재임한 지 보름도 안 돼 선종한 요한 바오로 1세의 피살설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랜 교황직의 역사에서 개혁 교황으로 손꼽히는 이는 레오 13세와 요한 23세,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 정도다. 저자는 서문에서 “교황의 역사도 다양한 시각에서 쓰일 수 있다”며 “나는 많은 교황의 발자취를 따라왔는데 그중 적지 않은 이가 영적인 행복보다 세속적인 권력에 더 많은 관심을 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가톨릭의 울타리를 넘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이런 교황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