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이 지난 24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총장 재직 4년을 정리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이 지난 24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총장 재직 4년을 정리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이화여대가 128년 역사 동안 잘해왔고 앞으로 100년 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4년이라는 세월이 눈 깜빡할 사이에 갔습니다.”

오는 31일 4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의 말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김 총장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동문을 비롯해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며 “산학협력관을 준공하고 기숙형학교(RC)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 세계 750개 대학을 대상으로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라이덴랭킹에서 국내 1위를 한 것 등은 뿌듯하다”고 말했다. ‘4년을 하루처럼 보냈다’는 김 총장은 법대 평교수로 돌아가면 10년 전에 계획했다 늦춘 법여성학 교재를 쓸 계획이다. 정치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월요인터뷰] 4년 임기 마치고 물러나는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 "청년, 실패 두려워 말라…학습·체험·봉사 최선 다하면 미래 열려"
▷총장 재직 4년을 마무리할 시점입니다.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특별히 소회라고 할 만한 것은 없어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임기가 끝나고 난 뒤 법여성학에 관한 교재를 집필하기로 출판사와 계약한 것입니다.”

▷총장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직 제대로 정리할 여유가 없어서 지나고 난 다음에 생각해야 할 듯하지만 재임하면서 계획한 일이 안 되는 경우가 있고 계획하지 않았어도 선물처럼 이뤄진 것도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임 당시에는 내 이름으로 된 업적이 하나도 남지 않아도 내가 학교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건물도 많이 짓고 이런저런 일들을 했더군요.”

▷뜻하지 않은 선물이 많았다고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벨기에 화학기업 솔베이와 제휴해 만든 산학협력관입니다. 저는 과학을 통해 한국과 세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대와 과학에 관련된 지원을 많이 했습니다. 솔베이도 미래 과학의 주역은 여성이라는 신념이 강한 회사였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했습니다. 솔베이와의 협력은 한국의 과학 역량이 커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일은 창업센터를 만든 것입니다. 앞으로 학교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라이덴랭킹에서 이화여대가 국내 대학 1위를 차지했습니다.

“라이덴랭킹은 연구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국내 대학 논문 중 이화여대 논문의 질이 최고라는 인정을 받은 것이어서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국내 대학평가는 취업률 등이 포함돼 여대가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하지만 이화여대는 여자대학으로서 의대 법대 공대 등을 갖춘 세계에서 유일한 대학입니다. 퇴임 이후에도 라이덴랭킹 순위는 계속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버드나 예일대 등 해외 명문대와의 교류도 활성화됐고 교수와 학생이 활발히 오가면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각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정부도 좀 더 다양한 정책을 내놔야 합니다. 이화여대가 라이덴랭킹에서는 국내 1위지만 국제적으로는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충분한 역량이 있는 대학에 자율을 줘 대학이 책임감을 갖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임기 동안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요.

“여성의 복지를 최대한 보장하는 고용주로서의 사회적 모범을 보여주고 싶었고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고 싶었는데 반값등록금 등 재정 문제가 걸림돌이 돼 생각만큼 훌륭하게 학교 살림을 꾸리지 못했습니다. 학교 형편이 나아지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유학한 독일이 최근 일자리 창출 등 한국의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 제도에 대해 연구가 많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30~40% 수준으로 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하지만 자기 역량에 맞는 직업을 갖고 열심히 하면 대학 나온 사람과 같은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도 있죠. 우리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성 대통령이 나올 정도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지만 여전히 한계도 있다는 지적인데요.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원칙을 지키고 깨끗하다는 것이 여성 리더십의 본질입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을 더 포함시켜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각종 위원회에 여성 위원 40% 참여를 목표로 했는데 최근 구성한 통일준비위원회에는 30명의 민간위원 가운데 여성이 두 명에 불과합니다. 현재 전체 국회의원의 15% 수준인 여성 정치인도 30% 정도까지는 늘어야 여성 리더십이 좀 더 힘을 받을 것입니다. 정치는 여성들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지만 경제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도 더 많은 여성 인력이 참여하고 책임질 수 있게 해주면 더 발전할 것입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합니다.”

▷최근 대학에서 인성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총장 재임 기간 중 교양교육의 내용을 크게 바꿨습니다. 대학에서도 가정에서만큼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나 공동체 의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지난해 레지던셜 칼리지(기숙형 교육 프로그램) 시범사업을 시작해 신입생들이 생활을 함께하면서 교육받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선·후배 관계도 밀접하게 다지면서 체계적인 인성 교육이 가능해 학생들도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함께 생활할 공간이 필요해 최근 신축 기숙사 기공식도 열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겠지만 지나고 나면 대학생 때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많은 것을 시도해 보고 열정으로 최선을 다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학습, 사회적 체험, 봉사 등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가능하면 학교 캠퍼스 안에 더 많은 시간 머무르면서 자신의 꿈을 준비하는 시간을 만들기 바랍니다.”

▷‘3포시대’라고 좌절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도전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젊음이 있으니까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기 어려운 것은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고 사회적 환경도 문제가 많기 때문이니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책임감을 갖고 도전하고 시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담대한 젊은이가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여름방학에 학생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은.

“어려울 때 긍정적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 있는데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지은 ‘린 인(Lean In)’이라는 책입니다. 끼어들어라는 뜻인데 남성 중심 사회의 편견을 깨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입니다. 여성에게 사회가 이해하고 지지를 보내주며 함께 가야 합니다. 남녀 평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선진국이라 할 수 없어요.”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은

'여성 1호' 휩쓴 법학자
온화한 성품…'엄마총장' 별명


김선욱 총장의 삶을 수식하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는 ‘최초’다. 이화여대 법학과에 수석 합격해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법여성학 1호 교수로 임용됐다. 여성 최초로 법제처장을 맡아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 등을 진두지휘했다. 2010년부터 제14대 총장으로 학교를 이끌었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장, 한국젠더법학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에 학생들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엄총(엄마 총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52년 출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 법학박사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 △한국공법학회 부회장 △제26대 대한민국 법제처장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 이사장

정리=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