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정원’ 앞에 선 심영철 씨. 제주현대미술관 제공
‘매트릭스 정원’ 앞에 선 심영철 씨. 제주현대미술관 제공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구슬 수백 개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떤 것은 질서정연하게 배열됐고 또 어떤 것은 거대한 폭포처럼 천장에서 쏟아져 내린다. 각각의 구슬은 저마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의 모습을 비추며 그것을 다시 주변 구슬에 반사하면서 무한대로 증식해나간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실상’과 존재하지 않는 ‘가상’을 하나의 공간 속에 포괄하고 있다. 우주의 파노라마가 똬리를 튼 심영철 작가(수원대 교수)의 ‘매트릭스 정원’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간 일관되게 미디어를 기반으로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통합을 시도해 온 심씨의 대규모 초대전 ‘춤추는 정원’이 8월22일까지 제주시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그는 테크놀로지의 기계적 편리성과 기발함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자연과의 통합, 감성적 매체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제주현대미술관 본관의 전체 공간을 활용한 이번 전시는 1990년대의 ‘전자 정원’부터 최근의 ‘매트릭스 정원’에 이르기까지 구작과 신작이 망라됐다.

작가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전자 정원’은 마음속에 자리한 낙원의 풍경을 과학과 예술을 결합해 제시한 것이다. 이 연작은 홀로그램 등 첨단 기법을 도입한 국내 최초의 인터랙티브 아트로 1993년 대전엑스포에 전시돼 큰 호응을 얻었다. 화려한 색상의 유리꽃이 만발한 ‘기념비적 정원(Monumental Garden)’은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인 대지의 생성소멸 과정을 보여준다.

뒤이은 ‘비밀의 정원’은 외형적 아름다움에 주력했던 앞의 두 연작과 달리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간 작가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옥, 자수정 등 원석과 절제된 색채를 사용해 여성들만의 내밀한 정원을 꾸몄다. 그것은 작가의 개인사적 아픔을 보듬는 치유의 정원이기도 하다. ‘매트릭스 정원’은 그런 내면에 대한 관심을 통해 도달한 본질의 세계다. 이 네 개의 정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장은 전시 제목대로 우주의 실상과 허상, 겉과 속이 역동적인 율동을 보여주는 ‘춤추는 정원’이 됐다.(064)710-7806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