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는 작년 4월 금리 인하 뒤 이달까지 15개월째 금리를 동결(연 2.5%)했다. 완만하게나마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진단에서였다. 지난 4월 취임한 이주열 한은 총재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올해 완료될 예정인 만큼 금리 정상화(인상)에 더 무게를 두는 듯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환율 하락까지 겹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10일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낮추며 낙관론을 접었다. 게다가 새 경제팀을 이끄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 부양에 강한 드라이브를 건 상태다. 한은은 정책 공조를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금리 인하의 득실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리를 내리면 단기적으로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견해다. 가뜩이나 막대한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요국 출구전략(금리 인상)과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경기 활성화가 시급하기 때문에 한은이 금리 인하 카드를 미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풀지 않는 이상 단기부양은 한계가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찬성 “금융부채 많은 계층 소비 개선…물가상승도 걱정할 수준 안돼”
‘얼마나 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우리 수출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고 선진국 경제의 회복도 예상보다 더디다.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 경제의 불안감이 더해져 세계수요 전망이 기본적으로 좋지 않다. 원화 가치가 빠르게 올라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도 우려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수출제품도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고전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내수 경기를 생각하면 경제 활성화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연초 회복되는 듯하던 내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부진하다. 올 1분기 설비투자는 전분기 대비 1.9% 감소했다. 특히 기계류 투자는 4.9% 급감했다.
민간소비 부진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추모 분위기 속에 국민은 외식조차 자제해왔다. 지난달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4%와 5.8% 줄어드는 등 여파는 오래갔다.
이런 가운데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한 눈높이는 이미 하향 조정됐거나 더 낮춰질 전망이다. 한은은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0%에서 3.8%로 낮췄고 한국경제연구원도 3.5%에서 3.4%로 내렸다.
물가 안정이 제1 목표인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는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12년 11월부터 20개월째 연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 5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0%로 0.25%포인트 인하한 뒤에도 1%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한은 역시 지난 10일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연 2.1%에서 1.9%로 낮췄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현재 경기 흐름에 대해 “하방리스크가 우세하다”고 진단했다. 연 1.9%보다 낮은 물가상승률을 앞으로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원화 강세로 수입물가가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 한은으로선 금리 인하에 따른 물가 상승을 걱정할 이유가 적어보인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민간소비 개선에 도움이 된다. 물론 금융자산이 많은 고소득층, 부유층, 노년층은 금리 인하로 인해 이자소득이 줄어든다. 하지만 금융부채가 상대적으로 많은 저소득층, 중산층, 청년층은 원리금 상환부담이 줄어 돈 쓸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버는 대로 다 쓰느라 빠듯한 저소득층은 소득이 늘어나는 대로 소비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
경기 회복으로 소득이 늘어나면 가계부채 부담은 자연히 줄어든다. 한은은 금리 인하에 따라 가계부채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부채 부담은 단순 총량이 아니라 전체적인 소득 성장세와 함께 봐야 한다.
금리 인하는 경기 회복을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물론 금리 인하만으로 오랫동안 위축된 소비·투자심리를 돌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감세와 금리 인하 등 거시경제정책뿐만 아니라 규제 완화 같은 미시경제정책의 ‘정책조합(policy mix)’이 필요하다. 국민과 기업이 활기찬 경제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기준금리 인하는 그 첫걸음이다. ‘금리 인하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이미 늦었다. ‘얼마나 내릴 것인가’가 한은의 고민이어야 한다.
반대 “현재 기준금리도 낮은 수준…가계부채 늘면 장기 소비 타격”
인하 시기 이미 놓쳐…다른 방안 찾아야
과연 현시점에서 금리 인하가 반드시 필요한가. 필요성을 정면으로 반박하긴 어렵다. 하지만 신중히 접근할 필요는 있다. 단기부양에 집중하다가는 중장기 전략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는 재정정책과 함께 대표적인 경기 활성화 수단이다. 즉 경기의 급격한 하강에 대비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현재 한국 경제가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면 금리 인하는 경기순응성을 키우므로 필요성이 낮다. 경기순응성이란 경제 주체의 인식과 행위가 경기변동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경기가 좋아질 때는 미래에 대한 낙관이 더해지면서 대출이 급증하는데 이는 신용팽창을 가속화할 수 있다.
지난 1분기 한국 경제는 3.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잠재성장률과 유사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으로 심각한 경기 위축과 거리가 있다. 다음주 발표될 2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경기부진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반기에 경기회복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재의 통화정책은 이미 완화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기준금리는 연 0.8% 수준이다. 통화정책 운용방식을 통화량에서 금리 중심으로 전환하며 기준금리를 도입했던 1999년 이후 전 기간 평균보다 다소 낮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한 평균값과 비교하면 현재의 실질 기준금리가 0.5%포인트 낮다. 다시 말해 지금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것도 완화적 통화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감안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부양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가계부채 증가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와 맞물려 가계부채가 급증한다면 원리금 상환부담이 늘어나 중장기적인 소비여력이 제약될 수 있다.
금리 인하 시점도 다소 애매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이어지면서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올 하반기 종료되고 내년엔 금리 인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당초 구상보다 빨리 금리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기준금리도 상승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해 4월 이후 15개월간 동결하던 기준금리를 갑자기 인하했다가 얼마 후 반대로 인상하는 것은 통화정책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부담스럽다.
사실 금리 인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했어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실기한 측면이 있다는 점과 잠재적 부작용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처럼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 대신 창의적이고 미시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찾는 게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실물경기가 급락해서 일어난 단기적 위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구조적인 이유로 경기가 활력을 잃으면서 저성장이 이어지는 장기적 위기다. 한국 경제가 금리 인하라는 주사 한 방에 금방 되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