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인 노재순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눈으로 소리를 보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서양화가인 노재순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눈으로 소리를 보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프랑스 음악가 드뷔시(1862~1918)의 교향시 ‘바다(La Mer)’를 듣고 있으면 고요한 새벽 바다부터 해가 떠오르는 바다, 광풍이 몰아치는 바다까지 다채로운 바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각각의 음을 이어주는 화음입니다. 그림에서도 어떻게 하면 그런 화음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지요.”

중견 서양화가 노재순 씨(60)가 작업을 하며 드뷔시의 ‘바다’를 즐겨듣는 까닭이다. 14~25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여는 노씨는 “사람들은 눈으로 음악을 보고, 귀로 미술을 듣는 데 익숙해 있는데 회화를 통해 소리의 세계에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노씨는 해변이나 강변의 풍경을 문학적으로 화면에 옮겨놓는 작가다. 2006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로부터 예술문화상 공로상을 받았고, 2007~2009년에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맡아 화가들의 권익 옹호에 앞장섰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바다를 듣고, 소리를 보다’. 강풍이 몰아치는 제주 애월리 해변, 해무가 자욱한 백령도, 비오는 날의 낭만적인 경포대, 갈대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은 신두리, 스페인에 서식하는 꽃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근작 20여점이 걸린다.

그의 작품에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바다 소리’가 담겨 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바다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 사이에서 수많은 의표를 담고 다가오는 ‘소리’의 향연인 셈. 커다란 화폭 속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의 소리는 하나같이 ‘거친 듯 부드럽고, 무거운 듯하면서도 가볍게 느껴진다. 색감은 단조롭지만 격정적이고 은유적인 미감이 화면에 숨어 있다. 기법이나 스타일보다 ‘소리’라는 소박한 메타포로 관람객과 소통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바다는 세상 모든 소리의 스펙트럼 같은 것입니다. 그 안에는 자연의 소리, 인간의 소리, 생명의 소리가 묻혀 있다는 상상을 해요.”

노씨가 바다에서 건져내 화폭에 옮긴 소리는 아늑하고 소녀의 꿈같이 순박하며 로맨틱하다. 옅은 청회색톤 빛깔, 희고 푸른 포말과 하늘, 여기에 파스텔풍으로 처리한 화면은 그런 소리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 건네는 화해의 악수이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행복의 선율이다.

“멜로디를 심포니로 연주하는 멜로디포니(melodyphony) 같은 화음이 느껴지는 그림을 통해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세상사를 털어내고 평안한 휴식을 가져다주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바다 이미지에 여인과 꽃을 살짝 들여놓는다. 그림 속의 여인은 모두 멈춰 서서 멀리 바라보거나 연기를 하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스페인을 여행하며 포착한 다채로운 꽃을 담은 풍경화도 내보인다. 작가는 “그곳에서 서로 다른 풍경과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역동적인 에너지와 자연의 순수를 함께 지닌 스페인의 꽃에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