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지난달 27일 ‘인사청문회 개혁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이대로 가다간 ‘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올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가적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은 이 같은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현재의 청문회 제도를 만든 당이 바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라며 “본인들이 집권할 때는 제도를 바꿔야 하고 본인들이 야당일 때는 청문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갈지(之)자’ 정당에 대해 과연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실제 인사청문회는 2000년 16대 국회 당시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주도해 법제화했다. 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원장 및 대법관·헌법재판소장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됐으며 2005년부터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역대 총리 후보자만 총 6명이 각종 의혹에 따른 여론 악화 등으로 낙마했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청문회 제도를 도덕성(비공개)과 정책(공개) 등 ‘2단계 검증’으로 개선하자는 여당 측 방안을 놓고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과 서영교 새정치연합 의원이 찬반 논쟁을 벌였다.
찬성 능력보다 신상털기에 집착…도덕성 등은 사전 검증 필요
2단계서는 정책·업무수행에 초점
인사청문회는 공직 후보자의 국가관, 도덕성, 직무수행능력, 업무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공직 후보자가 그 직에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통해 국민과 국회가 행정부의 일방적인 인사권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근 국무총리 후보자에 올랐던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의 낙마를 보면 인사청문회 제도가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 장관 인사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낙마자가 ‘2+α’는 돼야 한다는 등 공직 후보자를 정치 흥정의 대상으로 삼으며, 청문회가 정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직무수행능력이나 정책적 견해보다는 도덕성 검증이라는 미명 아래 배우자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까지 요청하는 등 가족들의 신변잡기까지 들추고 있다.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팽목항에 상주하며 공직의 표상으로 떠오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지난 청문회 당시 무려 40여년 전 신혼 전셋집 위장전입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망한 후보자들은 가족의 반대가 심해 공직을 수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과도한 ‘신상털기’는 분명 심각한 사생활 침해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힘들게 하고 있다.
또 마타도어(흑색선전)식 폭로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통해 변론의 기회를 가지지도 못한 채 낙마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전임자 사퇴 이후 후보자가 낙마하면 해당 부처는 수장의 장기간 공백기가 생기게 되며 이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무분별한 개인정보의 노출과 폭로는 국민들에게 정신적 피로감과 부정확한 정보 전달로 인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후보자는 공직 임명 후에도 조직 장악력과 리더십 약화로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 도덕성과 청렴성을 검증하는 일은 필수다. 하지만 무분별한 후보자 신상 공개와 가족에게까지 미치는 정신적 피해는 능력 있고 역량 있는 인재들이 공직으로 나아가길 꺼리게 할 것이다.
2010년 국회 운영위원회가 마련한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방향’ 보고서를 보면 의원들이 과도하게 후보자의 사생활을 검증하려고 하는 것은 “도덕성 문제가 후보자를 쉽게 흠집 내고, 정책 분야 검증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역기능을 제어하고 본래 청문회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사청문회에 별도의 인사청문소위원회를 둬 비공개로 도덕성 검증을 완료한 뒤 인사청문특별위원회 및 상임위원회에서 업무능력 검증을 위한 청문회를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공개로 이뤄지는 인사청문소위원회의 주요 기능은 정부에서 제출한 공직 후보자의 신상 자료 재검토 및 추가 자료 요구, 여야 간 의견 조율 및 인사청문회 회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후 공개되는 인사청문회는 공직 후보자가 한 부처 장으로서의 능력과 자질, 업무수행능력 등을 검증해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에 맞춰 국정과제 및 주요 국가 사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행정전문가를 선출하면 된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같이 싸우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나와 성향이 다르거나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성 검증을 악용한다면 국가 발전과 개혁을 이룰 인물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대 탈세 등 청문회 前 확인 가능…문제는 불투명한 '밀실추천'
인사시스템 방식 등 개선이 중요
박근혜 대통령은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창극 후보자마저 각종 의혹 등으로 자진사퇴하자 “총리 후보자의 국정수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 신상털기식, 여론 재판식 비난이 반복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으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사임을 표명한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는 초유의 인사 참사를 불러왔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안대희·문창극 후보자 낙마를 마치 야당의 흠집내기식 청문회 진행 탓으로 돌리며 사실을 호도하고 있지만 두 후보자는 야당이 확보한 문제점들을 제기하기 이전에 언론의 사전검증을 넘지 못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마자 새누리당은 현행 인사청문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현재 논의하고 있는 방안은 개선책이 아니라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키는 개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인사청문회를 대비해 후보자들에게 미리 확인하는 200건의 사전 질문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지는 가족 관계, 병역의무, 전과 및 징계, 재산 형성 과정, 납세, 학력 및 경력, 연구 윤리(논문), 직무 윤리, 사생활 등 9개 항목에 걸쳐 총 200개 질문에 대해 후보자가 직접 ‘예’ ‘아니오’로 답하도록 돼 있다. 문제가 있으면 소명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사청문 후보자 검증의 가장 기본이 되는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병역비리’ ‘논문표절’ ‘전관예우’ 문제는 사전에 충분히 확인 가능한 사항이다. 최소한 이 질문지만이라도 상세히 검증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의 수많은 인사 참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1기 내각 구성 과정에서 김용준 총리 후보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의 낙마로 최소한 청와대 인사추천시스템은 재정비돼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친’줄 알았는데, 최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구성을 위한 8건의 인사청문회가 차례로 진행되면서 거의 모든 후보자가 문제점을 드러냈다. 세간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마저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필자는 최근 안대희 후보자 인사청문위원까지 19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11번의 청문위원으로 활동했다. 11명의 후보자 중 공식적으로 청와대로부터 사전질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힌 후보자가 있을 정도로 청와대의 사전검증은 신뢰성을 잃고 있다. ‘누가’ ‘어떤 경로로’ ‘어떤 이유’에서 추천했고 ‘도덕성과 직무능력을 어떻게 검증’했는지 하나도 알려지고 있지 않다. 노무현 정부 시절 상시적인 인사검증을 위해 인사수석실을 운영했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상시적이고 예측 가능한 인사추천시스템은 붕괴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가 비상설적으로 운영되면서 밀실 추천, 코드 추천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말 바꿔야 할 제도는 ‘인사추천시스템’과 ‘사전검증 방식’ 및 ‘사후검증 방식’이다.
또 현행 인사청문제도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사후검증 방식’에 대해서는 청문회 과정에서 위증을 하면 청문회가 종료된 뒤 처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2012년 9월에 대표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