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왕비 수시로 갈아치운 헨리 8세
헨리 8세는 르네상스 시대 영국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군주다. 190㎝가 넘는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가졌으며, 학문과 예술 진흥에 전폭적 지원을 하고 빈곤 퇴치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러나 왕비를 수시로 갈아치우고 그중 2명을 처형한 것으로 단연 유명하다.

1509년 즉위 전 정치적 목적으로 죽은 형의 부인 캐서린과 결혼했다. 캐서린에게 싫증을 느낄 때쯤 시녀인 앤 볼린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를 반대하자 성공회를 만들어 국교로 선포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뒤 캐서린을 버리고 앤과 결혼했다. 그러나 앤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간통, 근친상간 등 죄를 덮어씌워 죽였다. 앤이 낳은 딸이 변방 섬나라였던 영국을 최강대국으로 만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다.

앤을 처형한 지 얼마 안 돼 그의 시녀였던 제인 시무어와 결혼한다. 제인은 유일하게 헨리 8세에게 아들(에드워드 6세)을 안겨줬다. 그러나 제인은 출산 후유증으로 곧 세상을 떠났다.

긴 애도기간을 가진 헨리 8세는 정략적 목적으로 클레베스 공국의 앤을 왕비로 맞이하나 궁합이 안 맞아 결혼을 무효로 하고, 다섯 번째 왕비로 캐서린 하워드를 들였다. 그러나 결혼 전의 문란함을 이유로 곧 죽여버리고 마지막으로 유복한 미망인이었던 캐서린 파와 결혼했다. 말년에는 거동을 못 할 정도로 몸이 비대해졌으며 통풍, 종기 등에 시달리다 1547년 1월28일 세상을 떠났다.

이해성 기자 l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