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수(먹는샘물)를 생산하는 A기업은 지난해 기존 공장을 활용해 탄산수 제품도 만들려는 계획을 검토했다. 국내 탄산수 시장규모가 2010년 75억원에서 작년 195억원으로 2.6배 커지면서 사업 진출을 타진한 것. 기존의 먹는샘물에 탄산만 첨가하면 되는 만큼 따로 공장을 지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A기업은 계획을 중도 포기했다. 생수공장에서 먹는샘물 이외의 음료 제조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먹는물 관리법’ 규정 때문이다.

#2. 경기지역 산업단지의 중소기업 B사는 가뜩이나 힘든 직원 채용이 기숙사 때문에 더 어렵다고 했다. 기숙사 시설이 낡은 건 아닌데, 개별 취사가 아닌 공동취사 형태여서 젊은 구직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 회사의 설명이다. 현행 건축법은 산업단지 내 기업 기숙사에 대해 공동취사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정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런 규제 없애라] 시장 커지는 탄산수, 생수공장서 못 만든다니…기업 울리는 '황당 규제'
정부가 ‘규제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낡은 규제’와 ‘황당한 규제’는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3월부터 회원사들로부터 접수한 규제개혁과제 1300여건 중 서둘러 개선해야 할 628건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10일 발표했다

820페이지 분량의 ‘규제개선 건의서’를 보면 기술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낡은 규제들이 많았다. 휴대폰 유심(U-SIM)칩이 대표적이다. 현행 전기통신설비 지침은 ‘유심칩은 통신단말기에 삽입해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단말기 외부에 부착하는 등 ‘삽입’이 아닌 형태로 디자인하면 안된다. 스마트시계, 스마트안경 등 웨어러블 기기 등이 속속 나오는 정보기술(IT) 시장 변화와 동떨어진 규제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이런 사례는 더 있다. 자동차 정비사업자는 전자기록시스템을 갖추고 있더라도 정비내역서를 반드시 종이로만 보관해야 한다.

황당 규제도 많았다. 경기도 인근의 C사는 공장 준공 이후 인근 부지가 녹지로 지정되면서 강화된 소음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장 준공 후 주변 택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민원이 제기되자, 지방자치단체가 공장 소음을 도서관에서 책장 넘기는 정도인 40데시벨 이하로 유지하라고 압박을 가해서다. 소음방지를 위해 200억원가량을 들여 방음시설 등을 설치해 현재 소음을 53데시벨로 낮췄는데도, 해당 지자체는 40데시벨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조업중단 명령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찰과상,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체육시설은 약국이 아니지만 일반 의약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해당 체육시설에 골프장, 스키장, 썰매장 등은 포함하고 수영장, 빙상장은 제외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호주 등에선 먹는 샘물 공장에서 탄산수도 생산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안되고, 미국 캐나다 등에선 화장품으로 지정된 치아미백제가 국내에선 의약품(과산화수소 3% 초과시)으로 관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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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