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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를 위한 미술산책] 상인이 부자가 되면 미술품 수집…물질보다 정신적 만족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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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53> 중국미술 왜 뜨는가
    ‘양주팔괴’의 한 사람인 변수민(邊壽民)의 ‘쏘가리’ (18세기)
    ‘양주팔괴’의 한 사람인 변수민(邊壽民)의 ‘쏘가리’ (18세기)
    상하이 최고의 미술품 컬렉터 중 한 사람인 리우 이치안. 그는 택시기사 출신으로 대학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중국을 대표하는 거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흥미로운 점은 그는 자기가 번 돈으로 고대 청동제기부터 현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미술품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것일까. 천만에. 그는 얼마 전 이 수집품을 바탕으로 두 개의 미술관을 세웠다. 그는 왜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놔두고 하필 이 미술품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

    [CEO를 위한 미술산책] 상인이 부자가 되면 미술품 수집…물질보다 정신적 만족 추구
    그의 다소 ‘기이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전통을 살펴봐야 한다. 중국 전통사회에서 입신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과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소양을 닦아 문화권력에 접근하는 것이다. 문화권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창작이론의 공유와 그 영향력의 확대를 노린 조직적 움직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나 문화권력이나 사대부가 주축이 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먼저 정치권력에의 접근은 거의 태생적으로 결정된다.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사실상 과거 급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안정이 없이는 공부에만 목을 맬 수 없지 않은가. 서양으로 치면 혈통 귀족인 셈이다. 그러나 문화권력은 달랐다. 개인 노력 여하에 따라 사대부 출신이 아니더라도 접근이 가능했다. 그래서 미천한 신분을 타고난 상인계층은 부를 축적하고 나면 항상 문화권력을 좇았다.

    중국에서 재야 사대부들은 시회(詩會) 또는 아회(雅會)를 통해 공통된 취향과 미적인 태도를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사회와 정치권력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는 정치권력은 문화권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유한 상인들은 이런 문화적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신분 상승을 노렸다.

    가장 손쉽게 문화권력에 접근하는 방법은 높은 품격의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해 그것을 매개로 문인사대부와 친분을 쌓아가는 일이었다. 중국에서 골동품 수집과 감상은 예부터 고상한 품격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문인이나 사대부 화가에게 경제적 후원을 베푸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또 한 가지 중국에서 정치권력에 비해 문화권력이 개방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것이 양쯔강 이남의 강남지역 재야 사대부를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정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생활의 방편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상인계층과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인계층을 대하는 태도가 정치 권력자보다 개방적인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이곳은 명나라 때 ‘생활 속에서의 수양’을 주창한 양명학(陽明學)이 태동한 곳이기도 했다. 이윤추구 활동을 긍정하는 양명학은 사대부와 상인계층의 문화적 융합을 촉진했다.

    명나라 말기 휘주 출신 소금상인들은 이런 문화권력에 대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왕도곤을 중심으로 한 휘주의 소금상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자선활동을 하는 한편 서화 및 골동품을 수집하고 재야 사대부 모임에 적극 참여해 신분상승을 꾀했다.

    청나라 때 양주 소금상인의 신분상승 욕구는 명나라 상인을 능가했다. 청나라 조정의 지원을 업고 특권 상인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은 고서화 수집활동과 함께 ‘양주팔괴(揚州八怪·양주에서 활동한 여덟 명의 개성적 화가)’로 불리는 문인화가를 적극 후원했다. 이들은 화가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숙식을 제공하고 이들이 새로운 화풍을 형성하도록 북돋웠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유교 지식으로 무장하고 책까지 펴내는 등 ‘유상(儒商·유학자이자 상인)’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중국 미술시장이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는 이유는 이런 중국의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짚어야 이해할 수 있다. 치솟는 중국의 그림 값을 놓고 졸부의 돈 자랑이나 과시욕쯤으로 과소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개입을 얘기하는 것도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 바탕에는 돈보다 신분적 명예를, 물질적 쾌락보다는 정서적 만족을 우선시한 중국의 오랜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명작을 사들여 미술관을 짓는 택시기사를 떠올려보라.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오늘의 중국. 미술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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