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네모 세계지도가 지핀 16세기 '대항해 야심'
메르카토르가 62세 때인 1574년 지도 제작자이자 판화가 프란스 호겐베르크가 그린 초상. 컴퍼스와 지구의를 손에 들고 있는 지도 제작자의 모습을 묘사했다(위). 메르카토르의 1569년 세계지도 복사본(아래). 푸른길 제공
메르카토르가 62세 때인 1574년 지도 제작자이자 판화가 프란스 호겐베르크가 그린 초상. 컴퍼스와 지구의를 손에 들고 있는 지도 제작자의 모습을 묘사했다(위). 메르카토르의 1569년 세계지도 복사본(아래). 푸른길 제공
자신의 이름을 딴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 그는 지도 하나로 인류사에 획을 그은 16세기의 ‘벤처사업가’였다. 그는 당시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지리 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모아 경제적 가치를 지닌 지도와 지구의를 만들어 이른바 히트 상품을 만들었다. 그의 지도는 단순한 경제 상품 이상을 의미했다. 그가 1569년 만든 세계지도로 유럽인들은 정확하고 빠르게 원양 항해를 할 수 있게 됐다. 유럽 중심의 세계화를 이루는 데 영향을 미쳤다. 400년 전의 일이다.

[책마을] 네모 세계지도가 지핀 16세기 '대항해 야심'
《네모에 담은 지구》는 메르카토르의 생애를 중심으로 그가 1569년 만든 세계지도의 역사적 의미를 추적한다. 재일동포 2세로 현재 부산대 지리학과에 재직 중인 저자는 지난 5년간 다양한 자료와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인류사를 바꾸어놓은 이 인물을 탐구했다.

메르카토르는 처음 만든 지도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수요를 정확히 예측한 게 비법이었다. 1537년 그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제작된 성지를 그린 판화 벽지도인 팔레스타인 지도를 만들었다. 당시 성지순례는 기독교 세계에서 필수적인 여행이었다. 그는 열성 기독교인 사이에 존재했던 시장을 간파한 것이다. 그가 2년 뒤 만든 플랑드르 지도는 60년간 15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메르카토르가 인류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1569년에 만든 세계지도다. 사각형 테두리 속 경위선망이 가로, 세로, 수직으로 만나는 게 특징인 이 지도는 도법의 독창성과 유용성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인구에 회자된다. 고위도로 갈수록 면적이 극도로 확대되는 결정적 약점 때문에 항상 입방아에 오르는 양면성을 지녔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위선 간격을 창안해 지도에 표시했다. 이 투영법은 오늘날 해양 지도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들어진 지도 상에서 임의의 두 지점을 이은 직선과 경도선이 이루는 각을 읽은 후 나침반을 맞추어 항해하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가 1569년 만든 세계지도는 잉글랜드 궁정 관리, 정치가, 탐험가, 학자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았다. 당시 해상 군사력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과 경쟁할 수 없었던 잉글랜드는 동방 무역에 참여하기 위해 독자 무역 항로가 필요했다. 잉글랜드는 메르카토르의 지도를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덕분에 메르카토르의 세계지도는 항해도로 사용될 완벽한 기반을 갖게 됐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해도는 항해용 지도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다원추 도법, 람베르트 정각원추 도법 등과 경쟁하며 20세기까지 이어졌다.

한편 메르카토르 지도는 1970~1980년대 ‘지도전쟁’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아르노 페터스는 메르카토르 지도의 최대 약점인 극단적 면적 확대를 빌미로 삼아 자신이 만든 지도를 선전했다. 저자는 “지도가 그저 과학적 산물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지도는 단순히 지리적 정보성뿐 아니라 상징성, 정치성, 문화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