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한다던 총리가 두 달 만에 유임으로 결정됐다.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상황이다. 선동과 편견의 물결 속에 문창극 후보가 비정상적으로 퇴진당한 후유증일 것이다. 정치가 용기를 버리고 원칙을 포기할 때 어떤 일이 전개되는지를 목도하는 것은 국민들로서도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청와대는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게 된 배경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매우 큰 상황인데, 이를 더 방치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청와대의 변명이 아니더라도 싸구려 정치에 춤추고 당리당략에 좌우되는 저질 청문회는 개선돼야 마땅하다. 또다시 누구를 내세워도 피에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이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권력이 가치를 버리면 정치는 갈수록 불어나기만 하는 적대세력에 포위되고 마는 법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위기는 반복되고 무능은 구조화된다. 두 달간을 돌고돌아 ‘도로 총리’가 된 이번 사안의 본질과 핵심은 가치를 지키려는 용기와 원칙이 무시됐다는 점이다. 작두춤 같은 오도된 여론에 밀려 원칙이 흔들릴 때 어떤 오류와 실책이 거푸 터지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여론의 눈치나 살피면서 큰 원칙을 팽개치면 필연적으로 우왕좌왕이 나타나고 국정은 허무하게도 여론의 삼각파도를 맞게 된다. 조작된 여론은 예측조차 힘들어 극에서 극으로 내달리게 된다. 대중의 마음, 특히 조작된 정보에 흥분한 대중심리는 언제나 방향을 잃고 희생양만 찾게 된다.

이번 난국은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차에 스스로 조성한 것이다. 문창극 사퇴 유도, 정홍원 유임에 어떤 참모들이 조언하고 있는지 실로 궁금하다. 시중에 나도는 온갖 설들을 다 믿을 수도 없지만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이다지도 무지한 참모라면 지금이라도 내보내는 것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KBS는 어떻게 정상화할 것이며 다른 국정 과제들은 어떻게 풀어간다는 말인가. 인사수석실을 새로 만든다 한들 악화된 여론을 넘어서리라고 보지 않는다. 용기를 버리면 선동이 기승을 부린다. 오로지 신뢰를 밑천으로 해왔던 박근혜 정부가 직면한 신뢰의 위기다. 나라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