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을(乙)타령만 하는 신용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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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헌형 증권부 기자 hhh@hankyung.com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평가해 주는 대가로 그 회사에서 수수료를 받는 게 수익모델인 신평사들로선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수수료 수입이 전체 수익의 90%에 가까울 정도로 절대적이다 보니, 신평사들이 평가 대상 기업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 기업은 신평사들이 미리 제시해준 등급을 비교해 높은 등급을 주겠다는 곳을 골라 계약하는 ‘등급 쇼핑’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약자라는 이유로 신용등급을 사고파는 비정상적·불법적 관행을 용인하기는 어렵다. ‘등급 장사’ 문제를 취재하면서 “신용등급 AA등급 이상 우량 기업들의 경우 10~20%는 (등급) 버블이 끼어 있다고 보면 된다”는 신평사 연구원 출신 인사의 충격적인 말까지 들었다. 회사채 발행 기업 네 곳 중 세 곳이 A등급 이상인 것도 정상적인 시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등급 장사’와 ‘등급 거품’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신평사는 기업의 신용도에 등급을 매기는 판정관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신평사의 판정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신평사 판단에 따라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과 투자자의 손실 여부가 달라진다. 신평사가 ‘자본시장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먹고살기 때문이다. ‘검은 커넥션’이 적발됐다면 먼저 자성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우리는 을일 뿐’이라고 강변만 하는 신평사들의 변명이 궁색하게 들리는 이유다.
하헌형 증권부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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