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난극복의 역군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에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이라는 곳이 있다. ‘금천 순이의 집’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곳이다. 여기 들어서면 쪽방에 살면서 예전 구로공단에서 열심히 일하던 여성 근로자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쪽방은 말 그대로 작은 집을 쪼개 여러 개의 방으로 만든 것이다. 방마다 연탄아궁이가 있고 천으로 된 허름한 옷장, 일명 비키니옷장이 자리하고 있다. 문 대신 지퍼를 달아 간편하게 옷을 넣고 꺼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야학 공부를 하기 위해 사과 상자에 신문지를 붙여 만든 간이 책상도 눈에 띈다. 도배지가 귀하던 시절이라 곳곳에는 신문지로 도배가 돼 있다. 벽에는 ‘별들의 고향’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 영화 포스터도 붙어 있다. 주변에 있는 가게에는 당시 인기를 끌던 간식 ‘라면땅’과 ‘삼립빵’ 등이 전시돼 있다. 난로 위에는 추억의 양은 도시락이 놓여 있다. 가난하던 1960년대, 여성 근로자들은 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미싱 작업을 하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병석에 있는 부모님을 수발하면서 동생들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라’며 학비를 대주던 우리 누님들이다.

오는 9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50주년을 맞는다. 구로가 국내 처음으로 산업단지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당시엔 섬유 가죽 가발 산업 등이 주종을 이뤘다. 지금은 정보기술(IT)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 등 첨단 업종이 주력 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산업 기반이 전혀 없던 1960년대에는 이런 업종이 우리 수출을 주도했다. 소득 증대의 기반이었고, 배고픔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이들 산업이었다. 그 중심에 여성 근로자들이 있었다. 당시 구로공단 근로자의 70~80%가 여성이었다.

이들은 이제 대부분 60세를 훌쩍 넘었다. 이들에게 존경 어린 고마움을 표한다. 1964년부터 시작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 경제 성장의 물꼬를 텄다면, 산업단지 내 여성 근로자들은 한국 경제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했다. 50주년 행사에서 이들 중 연락이 닿는 분들을 초청해 작지만 감사를 표하는 행사를 열려고 한다. 그게 잊혀져가는 산업 역군의 발자취를 후대에 알리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다. 뿌리를 찾는 일은 산업단지를 발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더 없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강남훈 <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nhkang@kicox.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