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9층 무궁화 회의실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부자 검거 작전에서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이곳에서는 이성한 경찰청장이 유씨 부자 검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히 주재한 전국 지방경찰청장 화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검·경의 미진한 수사에 대한 질타와 함께 수사 방식 자체의 변화까지 요구한 터여서 회의실에 모인 이 청장과 참모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 청장의 모두발언에서는 현 상황에 대한 답답한 감정이 묻어났다.

그는 "검찰과의 공조 수사뿐만 아니라 지방청 간 긴밀한 공조수사를 당부한다"며 "특히 공적 다툼으로 인해 검거 기회를 놓치는 사례가 없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유씨 부자 검거 유공자에 대한 특진을 3명까지 공약한 것도 원활한 공조수사를 도모하려는 것이었다"고도 했다.

경찰은 애초 유씨 부자 검거 유공자 한 명을 특진시키겠다고 했으나 유씨 부자의 은신처 첩보를 입수한 경찰관이 직접 이들을 검거하려 덤비는 무리수를 두다 일을 그르칠 것을 우려해 최근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경찰관까지 특진 대상자로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경찰은 지난 3일에는 각 지방청의 유씨 부자 검거 작전을 지휘하는 '경찰 총괄 TF'를 인천청에 설치해 모든 정보를 TF에서 취합하고 지방청 간에 유기적으로 검거 작전을 펼치도록 했다.

하지만 특진자 수를 늘려도, 총괄 TF를 가동해도 경찰의 수사는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청장의 이날 발언에서는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찰 조직이 불필요한 내부 경쟁 탓에 효율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이 읽혔다.

이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경찰이 과연 검찰로부터 유씨 부자의 도피 경로와 관련한 제대로 된 정보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미심쩍은 시각이 존재한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 독립 등 갖가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충돌하며 긴장 관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두 조직이 이번 수사에서도 주도권을 놓치기 싫어할 것이라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시각에 대해 "검찰과 정보 공유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경찰은 어디까지나 검찰의 협조 요청에 따라 검거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범인 검거는 검찰보다 경찰이 잘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유씨 부자의 장기간 도주는 경찰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다른 사건과 달리 유씨의 도피를 돕는 이들이 종교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구원파 신도들이기에 경찰에 검거돼도 일절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이번 수사의 난도는 어느 수사보다 높다.

한 경찰 관계자는 "유씨 도피를 돕다 검거된 한 구원파 신도는 '이미 1970년대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 겁날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유씨가 전남 순천을 벗어나 밀항이 가능한 해남 등 해안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되자 경찰은 더욱 급해졌다.

유씨가 외국으로 달아나 버리면 수사는 더욱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이 청장은 회의에서 "유씨 부자의 밀항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만큼 해운·항만 시설을 맡은 관서장들은 검문검색과 첩보수집을 철저히 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