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효성 있는 지자체 파산제 도입을
지방정부의 재정상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통합회계기준 우리나라 전체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한 지방채 규모는 채무부담행위액을 포함해 27조1252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지방직영기업과 공사·공단 등 지방공기업의 채무 72조5144억원을 합하면 거의 100조원에 이른다. 17개 시·도의 통합재정수지는 모두 적자이며, 전국 244개 시·군·구 중 238개가 적자를 기록했다. 재정이 건전한 곳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 격차도 매우 큰데 인천, 대구, 부산, 강원, 성남, 용인, 태백 등이 재정위기에 빠진 지자체로 자주 거론된다.

지방재정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출과 수입의 연계고리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지방재정 수입을 부담하는 주체와 씀씀이를 결정하는 지출 주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란 얘기다. 지자체는 국가라는 든든한 뒷배경에 기대 일단 사업부터 벌이고 보자는 생각이 강하다. 인근 지자체가 특정 사업을 하면 비슷한 일을 벌여놓고 본다는 낮은 자치의식도 같은 맥락이다. 해당 사업의 수요는 관계치 않고, 비용부담 또한 신중히 고려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여기엔 선거제도가 한몫 톡톡히 한다. 눈에 띄는 선심성, 전시성 사업을 많이 벌일수록 능력 있는 자치단체장, 국회의원으로 여겨져 재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올해로 20년째를 맞았지만 지방재정 건전성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지방자치제도가 경제 문제에 발목을 잡히는 모습이다.

대책은 있는가. 단기적으로는 안전행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웃 일본과 미국은 지방정부 파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상시모니터링을 통해 재정위기 지자체를 지정·공표하고 이들로 하여금 재정건전화 계획을 의무적으로 세우도록 하는 것에서 나아가 상위 정부가 재정회생을 꾀하는 파산제도의 도입은 진정한 지방자치로의 진전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이들 재정위기 지자체는 지방채를 발행하거나 신규 투·융자사업을 추진하는 계획이 제한되며 해당 지자체의 재정 건전화계획 이행이 부진하면 지방교부세 감액 등의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 나아가 일정 정도의 지방재정권한에 대한 유보를 고려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도 파산자치단체에 대해서는 지방재정권을 유보하고 건전화를 위해 주정부가 법정관리한다.

지자체 파산제도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결국 지방재정이 가격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해당 지역주민들이 사업비 부담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성 예산제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출확대에는 반드시 주민부담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지방교부세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와 같이 모자라는 부분을 메워주는 형식이 아니라 기본적인 부족분을 깔아주되 추가적인 서비스에 대해서는 해당 자치단체의 주민부담으로 재원을 마련하도록 해 지방재정의 가격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지방자치 20년의 명암을 이야기할 때 지방분권의 제반 제도를 불투명성과 비정상의 정상화차원에서, 그리고 국가개조의 일환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년 만에 누더기가 돼 버린 중앙·지방 간 재정관계를 기본으로 돌아가서 재구조화하는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광역과 기초단체의 역할과 기능, 일반지자체 따로 교육지자체 따로의 기득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또 하나의 제도를 도입하거나 지방세답지도 않은 지방세를 국세에서 이양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지방자치도 성년대접을 받을 때가 됐다.

박정수 < 이화여대 행정학 교수 parkj@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