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 통보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며 정치 쟁점화할 태세다. 탈레반처럼 턱수염을 기르고 아프가니스탄 말인 파슈툰어까지 배워가며 아들 석방을 위해 노력한 버그달 아버지의 노력은 휴먼 드라마 소재에서 퇴색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 버그달의 건강이 악화되는 점 등을 감안한 순수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장에 단 한 명의 미군도 버려두지 않는다’는 미국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려는 모습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취지라는 것이다.
정치도 단기 성과 집착
‘인종의 용광로’ 미국을 결속시키려면 영화든 대통령의 발언이든 어느 정도 미화(美化)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적당한 미화로 사회적 결속과 유대감을 조성할 수 있다면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탈레반 포로 다섯 명이 끼칠 수 있는 해악보다 사회적 유대감이 깨지는 게 (미국에) 더 해롭다”(데이비드 부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옹호론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북한과 납치자 문제 재조사에 합의한 것도 복잡한 정치 공학의 산물이지만 사회 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일본 내에서조차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위험한 도박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아베 총리는 별무반응이다.
국내외 눈치보지 않고 선진국 지도자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건 분열된 사회를 다시 결속시키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서일 게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사회 구성원은 모래알처럼 되는 게 현실이다. 이익집단들은 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민들은 한사코 자신들이 낸 세금보다 더 많은 정부 서비스를 받길 원한다. 구성원들의 구미에 맞추려는 이념이 춤을 추고 사회통합은 갈수록 멀어진다.
사회통합이 시대정신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권은 단기적인 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데 집착하게 된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장기 플랜은 안중에도 없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고용을 늘리기 위한 성장 이슈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권위주의 전제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로 되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전체 사회 공동의 목표를 이뤄가기 위해선 사회 구성원을 결집시킬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사회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국가개조 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 유대감은 위기 극복에 필요한 자원이다. 9·11 사태 때 미국이 보여준 단합과 외환위기 때 한국에서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이 그랬다.
지방선거가 끝났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념 성향이 깔려 있는 갈등형 정책보다는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골몰해야 한다. 무상급식 등 섣부른 복지 논쟁과 경제민주화 입법은 사회적 갈등만을 표출했을 뿐이다. 결속을 다지고 미래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 후에야 국가개조가 성공할 수 있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