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의 경계 거부한 日 어부 2세 '구룡포 순애보'
“물고기는 경계가 없지. 물고기를 따라 북상하는 어부들에게는 배가 닿는 곳이 유토피아, 황금의 엘도라도지.”

19세기 말 일본 가가와현 어민들이 배를 띄웠던 세토 내해 연안 어장은 어자원이 고갈돼 더이상 조업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물고기를 따라 ‘북상’했다. 그러다 배가 닿은 곳이 물고기가 차고 넘치는 구룡포였다. 그들은 고향을 버리고 하나둘씩 새로 발견한 ‘유토피아’로 건너갔다. 구룡포 어민들은 이들을 일본인이 아닌 ‘어부’로 받아들였다. 구룡포 일본인 거주촌의 시작이다.

4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이 오른 연극 ‘물고기의 귀향’(이윤택 극작, 남미정 연출)은 구룡포에 정착한 일본인 어부들과 그 후예들의 이야기다. 1880년대 조선 말기부터 조성돼 일제 강점기에 번성하다, 1945년 광복 직후 퇴락하고 현재 ‘관광 명소’로 변모한 일본인 거리가 배경이다. 조중희·권선희가 공동 집필한 다큐 산문집 《구룡포에 살았다》가 원작이다.

연극은 ‘다큐 역사 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과 ‘상생’하며 번창했던 구룡포 거주 일본인들이 광복 직후 일본으로 쫓겨난 역사적 사실과 구룡포에서 태어난 일본인 2세 시게모리와 한국인 처녀 순나의 애틋한 순애보가 그려지는 드라마적 허구가 버무려진다. 시게모리는 “나는 일본인이 아닌 구룡포 사람”이라며 미군정의 ‘일본 송환령’을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결국 미군에 의해 끌려 일본으로 떠난다.

극은 역사적 격변기에 국가와 민족의 경계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문제적 개인’의 역설적인 삶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메시지가 직설적이고 계몽적 성격이 강하다. 이로 인한 드라마의 빈틈을 최우정 강호석 최지연 등 배우들의 열연이 채워준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9월 “우리의 역사와 향토사를 연극예술로 승화시켜 미래세대에 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연극계 원로들이 모여 발족한 백민역사연극원(원장 김의경)의 첫 작품이다. 이 모임에는 연출가 김정옥 임영웅, 배우 이순재 박정자 손숙, 연극학자 및 평론가 고승길 유민영 이태주 등 4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원로 극작·연출가인 김의경 원장은 4일 시연회에서 “이번 공연을 발판으로 역사를 통해 우리 자신의 뿌리를 느끼는 연극 행위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8일까지, 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