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가정신인가] 말레이시아, 민간이 규제개혁 주도…2년 끌던 호텔 인허가 2주만에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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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기업 족쇄부터 풀어라
(1) 족쇄 푸는 말레이시아
2010년부터 국가개혁 시작
규제완화프로그램 'ETP'실행 후 경제성장률 7.4%로 급등
(1) 족쇄 푸는 말레이시아
2010년부터 국가개혁 시작
규제완화프로그램 'ETP'실행 후 경제성장률 7.4%로 급등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화려한 초고층 건물과 공사 현장이 뒤섞여 도시 전체가 개발 열기를 뿜어냈다. “하루가 다르게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길이 헷갈려요. 주소만 가지고는 쉽게 찾아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기관인 퍼먼두(PEMANDU)의 주소를 내밀자 택시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개발 열기는 말레이시아 현 경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지난 4년간 연평균 민간투자 증가율 17.7%, 1인당 국민소득(GNI) 증가율 40% 등 놀라운 변화가 진행 중이다. 비결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개혁 정책에 있다. 말레이시아는 2010년 성장을 위한 대개조 프로젝트인 ‘국가개혁정책(NTP)’을 시작했다. NTP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 문제 해결 및 컨설팅 기구인 퍼먼두를 만들어 경제개혁 프로그램(ETP)도 가동했다. 과감한 규제개혁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그 결과 지난 4년 말레이시아 경제는 확 바뀌었다.
저성장의 늪에 빠졌던 말레이시아
1990년대(1991~1997년) 말레이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9.2%였다. 그러나 2000년대(2001~2009년)엔 4.3%로 반토막 났다. 1970년대 1인당 GNI가 비슷했던 한국과 대만이 2만달러를 넘어서며 고속 성장하는 동안 말레이시아는 1만달러의 덫에 걸려 있었다. 저성장 국면 탈출이 시급했다. 그래서 2010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시작한 게 NTP와 실천 전략 ETP다. 2020년까지 1인당 GNI 1만5000달러의 소득 국가에 진입한다는 게 이 정책의 목표였다.
결과는 대성공. 2009년 -1.5%였던 경제성장률은 2010년 7.4%로 껑충 뛰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도 4~5%대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ETP 도입 이전인 2007~2010년 3.1% 수준이던 연평균 민간투자 증가율은 ETP 실행 이후 지난해까지 17.7%로 상승했다. 1인당 GNI도 4년간 42.5% 증가했다. 2009년 7059달러에서 지난해 1만60달러로 늘었다.
대외적인 평가도 달라졌다. 지난해 세계은행(WB)이 발표한 기업환경평가에서 189개국 가운데 6위를 기록했다. 한국(7위)보다 높은 순위다. 2010년 23위에서 3년 만에 17계단 뛰어올랐다. 작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분석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24위로 한국(25위)을 추월했다. 196개 규제개혁…기업을 뛰게 만들다
ETP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조안나 호 퍼먼두 홍보담당 매니저는 “저성장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주도로 명확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확실히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5월 말레이시아 정부는 ‘1000인(人) 워크숍’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1000명의 민·관 전문가가 말레이시아 경제를 성장시킬 12개 주력산업을 선정했다. 워크숍 참여자는 민간 전문가가 더 많았다. 210여개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급 800명이 참여했다. 110여개 세부 규제개혁 프로젝트도 도출했다. 세부 프로젝트는 500여명의 민·관 전문가가 8주간 600여 차례 회의를 열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아이템을 정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여기엔 말레이시아 현지 기업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델 오스람 등 해외 기업 임원들도 참여했다.
프로젝트 선정이 끝난 뒤엔 곧바로 실행방안을 만들었다. 12개 주력 산업별로 달성할 투자금액, 일자리, GNI 증가분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예를 들어 관광산업은 2020년까지 GNI 214조원·일자리 50만명, 정보통신은 GNI 188조원·일자리 25만명 등이 그것이다. 프로젝트별로 책임자와 시작·종료 일자를 정하는 등 지속해서 추진 성과도 점검했다. 또 프로젝트에 뽑히면 규제나 행정처리 과정을 대폭 단축하는 등 최대한 지원했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세인트 레지스호텔 인허가가 2주 만에 풀린 것도 관광산업 활성화 핵심 프로젝트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호 매니저는 “말레이시아는 중국과 중동에서 비행기로 각각 6시간 거리에 있다”며 “관광 산업 규제를 풀어 차이나 머니, 오일 머니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류·잡화 등 328개 품목 관세도 철폐했다”고 설명했다.
확 바뀐 ‘정부 DNA’
ETP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엔 퍼먼두가 있다. 퍼먼두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DNA를 확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12개팀 120여명에 달하는 직원의 80%는 민간 출신이다. 다토 닥터 아민 칸 퍼먼두 부사장도 말레이시아항공 CEO로 일하다가 2012년 말 퍼먼두에 합류했다. 그는 “민간기업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퍼먼두 주도 아래 말레이시아는 매년 ETP를 통해 새로운 규제개혁 아이템을 발굴했다. 2011년 110개였던 규제개혁 아이템은 2012년 39개, 지난해 47개가 추가돼 총 196개로 늘었다. 칸 부사장은 “규제개혁은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해서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말레이시아에 자회사를 세웠는데 지속 성장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말레이시아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퍼먼두 PEMANDU
Performance Management and Delivery Unit. 말레이시아가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GNI) 1만5000달러 진입을 목표로 경제개혁프로그램(ETP·Economic Transformation Programme) 등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총리 직속 기관. 정책 개혁과 실행을 컨설팅하는 역할을 맡는다.
쿠알라룸푸르=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개발 열기는 말레이시아 현 경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지난 4년간 연평균 민간투자 증가율 17.7%, 1인당 국민소득(GNI) 증가율 40% 등 놀라운 변화가 진행 중이다. 비결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개혁 정책에 있다. 말레이시아는 2010년 성장을 위한 대개조 프로젝트인 ‘국가개혁정책(NTP)’을 시작했다. NTP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 문제 해결 및 컨설팅 기구인 퍼먼두를 만들어 경제개혁 프로그램(ETP)도 가동했다. 과감한 규제개혁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그 결과 지난 4년 말레이시아 경제는 확 바뀌었다.
저성장의 늪에 빠졌던 말레이시아
1990년대(1991~1997년) 말레이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9.2%였다. 그러나 2000년대(2001~2009년)엔 4.3%로 반토막 났다. 1970년대 1인당 GNI가 비슷했던 한국과 대만이 2만달러를 넘어서며 고속 성장하는 동안 말레이시아는 1만달러의 덫에 걸려 있었다. 저성장 국면 탈출이 시급했다. 그래서 2010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시작한 게 NTP와 실천 전략 ETP다. 2020년까지 1인당 GNI 1만5000달러의 소득 국가에 진입한다는 게 이 정책의 목표였다.
결과는 대성공. 2009년 -1.5%였던 경제성장률은 2010년 7.4%로 껑충 뛰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도 4~5%대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ETP 도입 이전인 2007~2010년 3.1% 수준이던 연평균 민간투자 증가율은 ETP 실행 이후 지난해까지 17.7%로 상승했다. 1인당 GNI도 4년간 42.5% 증가했다. 2009년 7059달러에서 지난해 1만60달러로 늘었다.
대외적인 평가도 달라졌다. 지난해 세계은행(WB)이 발표한 기업환경평가에서 189개국 가운데 6위를 기록했다. 한국(7위)보다 높은 순위다. 2010년 23위에서 3년 만에 17계단 뛰어올랐다. 작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분석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24위로 한국(25위)을 추월했다. 196개 규제개혁…기업을 뛰게 만들다
ETP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조안나 호 퍼먼두 홍보담당 매니저는 “저성장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주도로 명확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확실히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5월 말레이시아 정부는 ‘1000인(人) 워크숍’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1000명의 민·관 전문가가 말레이시아 경제를 성장시킬 12개 주력산업을 선정했다. 워크숍 참여자는 민간 전문가가 더 많았다. 210여개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급 800명이 참여했다. 110여개 세부 규제개혁 프로젝트도 도출했다. 세부 프로젝트는 500여명의 민·관 전문가가 8주간 600여 차례 회의를 열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아이템을 정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여기엔 말레이시아 현지 기업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델 오스람 등 해외 기업 임원들도 참여했다.
프로젝트 선정이 끝난 뒤엔 곧바로 실행방안을 만들었다. 12개 주력 산업별로 달성할 투자금액, 일자리, GNI 증가분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예를 들어 관광산업은 2020년까지 GNI 214조원·일자리 50만명, 정보통신은 GNI 188조원·일자리 25만명 등이 그것이다. 프로젝트별로 책임자와 시작·종료 일자를 정하는 등 지속해서 추진 성과도 점검했다. 또 프로젝트에 뽑히면 규제나 행정처리 과정을 대폭 단축하는 등 최대한 지원했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세인트 레지스호텔 인허가가 2주 만에 풀린 것도 관광산업 활성화 핵심 프로젝트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호 매니저는 “말레이시아는 중국과 중동에서 비행기로 각각 6시간 거리에 있다”며 “관광 산업 규제를 풀어 차이나 머니, 오일 머니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류·잡화 등 328개 품목 관세도 철폐했다”고 설명했다.
확 바뀐 ‘정부 DNA’
ETP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엔 퍼먼두가 있다. 퍼먼두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DNA를 확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12개팀 120여명에 달하는 직원의 80%는 민간 출신이다. 다토 닥터 아민 칸 퍼먼두 부사장도 말레이시아항공 CEO로 일하다가 2012년 말 퍼먼두에 합류했다. 그는 “민간기업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퍼먼두 주도 아래 말레이시아는 매년 ETP를 통해 새로운 규제개혁 아이템을 발굴했다. 2011년 110개였던 규제개혁 아이템은 2012년 39개, 지난해 47개가 추가돼 총 196개로 늘었다. 칸 부사장은 “규제개혁은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해서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말레이시아에 자회사를 세웠는데 지속 성장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말레이시아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퍼먼두 PEMANDU
Performance Management and Delivery Unit. 말레이시아가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GNI) 1만5000달러 진입을 목표로 경제개혁프로그램(ETP·Economic Transformation Programme) 등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총리 직속 기관. 정책 개혁과 실행을 컨설팅하는 역할을 맡는다.
쿠알라룸푸르=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