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가 23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가 23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검찰 출신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안대희 전 대법관(사법시험 17회)을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자 야당이 내놓은 첫 반응이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정홍원 총리에 이어 검찰 출신을 연속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이는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여당인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이 법조인을 너무 중용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총리에 또 법조인…그들은 누구인가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고위직 인사를 할 때마다 법조계 출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첫 총리 후보자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고등고시 9회)이었다.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가 각종 논란에 휩싸여 사퇴하자 후임으로 검사 출신인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사시 14회) 카드를 꺼냈다. 안 후보자를 포함하면 연속 세 명의 법조계 출신 총리 후보자를 내세운 것이다.

다른 고위직에서도 법조 우대는 두드러진다. 현 정권의 핵심 실세로 불리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고시 12회)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황찬현 감사원장(사시 22회)과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사시 20회), 황교안 법무부 장관(사시 23회),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사시 33회),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사시 17회),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사시 5회)도 법조계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시 23회)를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고, 국가정보원 2차장에 김수민 전 인천지방검찰청장(사시 22회)을 앉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수석(홍경식·사시 18회)과 민정비서관(우병우·사시 29회) 공직기강비서관(권오창·사시 28회) 법률비서관(김종필·사시 28회)은 물론 민원비서관(김학준·사시 31회)까지 모두 법조인으로 채워졌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기춘 실장이 청와대로 들어온 이후 법조인 편중 인사가 더욱 심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실장은 최근 사석에서 “우리나라에서 애국심이 강하고 일도 잘하는 유일한 집단이 법조인 집단”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인 중용은 박근혜 정부만의 특징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도 신직수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법조인사들이 권력의 한 축을 이뤘고, 전두환 정부 때는 ‘육법당’(陸法黨·육군사관학교 출신과 법조계 출신이 중용되는 당)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총리에 또 법조인…그들은 누구인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군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서 배제되자 법조인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전격 발탁된 이회창 전 총리(고시 8회)가 대표적이다. 이 전 총리는 첫 법조인 출신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이한동·김석수 전 총리(이상 고시 10회) 등 2명의 법조계 출신 총리가 배출됐다.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 판사 출신인 김황식 전 총리(사시 14회)가 있다. 그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자 투입되면서 ‘대타 총리’ 소리를 들었는데, 총리직을 수행한 이후 ‘대타로 나서 홈런을 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황식 전 총리부터 안대희 후보자까지 연속 네 번 법조인 출신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판검사 출신이 요직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비판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훨씬 전부터 계속됐다”며 “다만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이 임기 중 1~2회 법조인 총리 카드를 꺼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총리 후보자 4명이 연속으로 법조계에서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법조인이 총리 후보자로 발탁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강화된 인사청문회를 꼽을 수 있다. 임명권자 입장에선 인사청문회의 검증요건이 대폭 강화되면서 청문회 통과가 지상과제일 수밖에 없다. 장상 장대환 김태호 등 역대 총리 후보자들은 이런저런 사유로 검증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반면 법조인들은 검증에선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조인들은 일정 고위직에 오르는 순간부터 재산변동 사항을 매년 공개하는 등 지속적인 자기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김황식 전 총리는 총리 퇴임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초임 판사 때부터 집 한 채 이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회고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정홍원 총리 역시 특별한 논란 없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법조인 출신이 법리에 정통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김황식 전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여야 의원들의 공세에 밀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법조인을 거듭 중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한 참모는 “박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의 구조에 정통한 인물이 필요하다”며 “국가개조에 앞장서야 할 총리라면 당연히 법적 지식이 해박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조인 총리가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인들은 오랜 법조생활을 통해 균형감각을 익히는 훈련을 받아온 점과 그에 따른 설득력도 강점으로 거론된다.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률가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종합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훈련을 평생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다른 로펌 대표는 “명예를 중시하는 법조인들 관점에서는 정치싸움으로 얼룩진 여의도 정치인의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며 “정치권으로 뛰어드는 법조인 가운데 이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반면 평생을 ‘법대로’ ‘원칙대로’를 강조하다 보니 융통성과 정무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정 총리가 세월호 사고 실종자 가족을 만나러 진도 팽목항에 간 자리에서 다른 일정을 이유로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현장을 떠나려다 가족들의 불만을 사 3시간 가까이 ‘억류’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창록 대표는 “사고의 경직성과 법의 테두리 내에서 상상력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병욱/배석준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