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본능' Chloe, 소년 감성 담아내다
끌로에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롱구스가 쓴 목가적인 사랑 이야기 ‘다프니스와 끌로에’의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2~3세기 그리스 레스보스섬을 배경으로 양치기 소년 다프니스와 그의 연인 끌로에의 사랑을 다뤘다.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소년, 소녀의 열정과 순수함을 포착한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라 시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순수 본능' Chloe, 소년 감성 담아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이집트인 가비 아기옹도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아기옹은 부드럽고 여성적인 실루엣을 살려 1952년 만든 자신의 여성복 브랜드명으로 끌로에를 선택했다. 낭만적인 연가의 주인공인 동시에 프랑스는 물론 영미권 여성의 이름으로 자주 쓰여 친숙하다는 점을 고려했다.

아기옹은 자신의 작품을 ‘럭셔리 프레타포르테’라고 불렀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고급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기성복이란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끌로에는 완전히 검증되진 않았지만 재능있는 디자이너를 끊임없이 발굴하며 아기옹의 자신감을 계승했다.

끌로에가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 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 스텔라매카트니의 스텔라 매카트니, 셀린느의 피비 파일로 등 패션계에 한 획을 그은 스타 디자이너들이 모두 끌로에 출신이다.

끌로에의 전성기는 칼 라거펠트와 함께 찾아왔다. 32세 때인 1965년 프리랜서 디자이너 자격으로 협업(컬래버레이션)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가 CD 자리에까지 오른 라거펠트는 20여년 동안 끌로에를 이끌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낭만적인 보헤미안 감성을 한껏 드러낸 라거펠트의 끌로에는 1970년대 절정을 맞았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라거펠트가 1984년 샤넬 CD로 자리를 옮기면서 끌로에는 침체의 늪에 빠진다. 1992~1997년 라거펠트가 잠시 복귀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듯하던 끌로에는 1997년 스텔라 매카트니가 CD에 발탁되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인 스텔라 매카트니는 당시 26세의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파격 기용돼 화제가 됐다. 그가 불어넣은 젊은 감각은 끌로에를 부활시키기 충분했다. 2001년 매카트니가 자신의 브랜드 스텔라매카트니로 독립하면서 빈자리는 그의 어시스턴트였던 피비 파일로에게 돌아갔다.

'순수 본능' Chloe, 소년 감성 담아내다
파일로는 육아 등 개인적인 문제로 끌로에를 떠나기 전인 2006년까지 매카트니의 끌로에보다 한층 진일보한 제품을 쏟아내며 돌풍을 일으켰다. 전임자인 파일로의 후광에 가려 실력만큼 빛을 보지 못하던 한나 맥기본 이후 새로운 CD를 물색하던 끌로에는 2011년 당시 30세였던 클레어 웨이트 켈러 를 기용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켈러는 21세란 젊은 나이에 미국 뉴욕에서 켈빈클라인 여성복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그는 랄프로렌의 최상위 라인인 퍼플라벨 남성복을 출시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탐 포드가 영국 런던의 구찌디자인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할 디자이너로 그를 발탁한 때가 200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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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5년 스코틀랜드 브랜드 프링글의 CD로 임명돼 현대적인 감성을 투영한 캐시미어 제품으로 주목받았다. 켈러를 영입한 뒤 끌로에는 흐르는 듯하면서도 여성스러운 플리츠에 소년스러운 감성이 접목된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켈러가 남성복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끌로에의 정체성인 여성스러움에 영리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끌로에는 ‘잇백’으로도 유명하다. 파라티, 마라시 등 스테디셀러 외에 2012년부터 알파벳을 주제로 시작한 ‘A·B·C…스토리’ 백 라인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2년 알파벳 A로 시작한 앨리스 백을 필두로 지난해 B로 시작하는 베일리 백, 올해 C로 시작하면서 CD의 이름을 딴 클레어 백을 잇달아 출시했다.

베일리 백은 내부 공간이 넉넉해 실용적이다. 여유로운 듯 무심한 디자인이 매력적인 제품이다. 사이즈는 라지 미디엄 스몰 세 가지인데 미디엄 사이즈 가격은 276만원이다. 끌로에는 현재 현대백화점 계열의 한섬에서 독점 판매하고 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